竹島問題の歴史

23.10.07

KBS Documentary on "Jukdo," the Real Usando

The following are links to a 4-part KBS documentary on Ulleungdo's neighboring island of Jukdo and the father and son who live there. The documentary was made in 2004. In the documentary, it said that the father had lived on Jukdo for more than forty years, and that there were three other families living there when he arrived. The stairs leading up onto Jukdo were not built until 1994, so before that it was explained that they had to climb up onto the island by a path along the cliff. The video also showed the building they use to collect rain water and the well in which it is stored. Except for the rain-water well, there is no other water on the island. The video said that the well had not run dry during the more than forty years the father had stayed on the island, but it did run dry during the filming of the video because, I think, the son forgot to turn off a pump. There is a lot of good video of the island, but if you want to see it, you first have to register with the KBS Web site HERE.)

KBS Documentary (August 16 ~ 19, 2004)

  1. The Father-Son Island, Part 1 (父子의 섬 1부)
  2. The Father-Son Island, Part 2 (父子의 섬 2부)
  3. The Father-Son Island, Part 3 (父子의 섬 3부)
  4. The Father-Son Island, Part 4 (父子의 섬 4부)
Korea claims that the old name for "Dokdo" (Liancourt Rocks) was "Usando" (于山島), but Korea's old documents talk about people living on "Yusan-gukdo" (流山國島 - 유산국도), which was a misspelling of Usan-guk Island (于山國島 - 우산국도), and old Korean maps show Usando was Ulleungdo's neighboring island of Jukdo. Korea's real "Dokdo" was Ulleungdo's neighboring island of Jukdo, not Liancourt Rocks.

At the time of the following entry, Ulleungdo, the "main island" (本島), was called "Yusan-gukdo" (流山國島 = 유산국도), and its smaller, neighboring island was called "Muleungdo" (武陵島), which was an alternate spelling of "Ulleungdo" (鬱陵島). The entry says that more than sixty people grew up on "Muleungdo," but that they later moved to the "main island" (本島), which was "Yusan-gukdo."

1412 Entry from the Annals of King Taejong (1412年 4月 15日 - 太宗 23卷)

"강원도 관찰사가 울릉도 유산국의 섬 사람에 대해 보고하다"

의정부(議政府)에 명하여 유산국도(流山國島) 사람을 처치하는 방법을 의논하였다. 강원도 관찰사가 보고하였다.

“유산국도(流山國島) 사람 백가물(百加勿) 등 12명이 고성(高城) 어라진(於羅津)에 와서 정박하여 말하기를, ‘우리들은 무릉도(武陵島)2128) 에서 생장하였는데, 그 섬 안의 인호(人戶)가 11호이고, 남녀가 모두 60여 명인데, 지금은 본도(本島)로 옮겨 와 살고 있습니다. 이 섬이 동에서 서까지 남에서 북까지가 모두 2식(息) 거리이고, 둘레가 8식(息) 거리입니다. 우마(牛馬)와 논이 없으나, 오직 콩 한 말만 심으면 20석 혹은 30석이 나고, 보리 1석을 심으면 50여 석이 납니다. 대[竹]가 큰 서까래 같고, 해착(海錯)2129) 과 과목(果木)이 모두 있습니다.’고 하였습니다. 이 사람들이 도망하여 갈까 염려하여, 아직 통주(通州)·고성(高城)·간성(杆城)에 나누어 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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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命議政府議處流山國島人。 江原道觀察使報云: “流山國島人白加勿等十二名, 求泊高城於羅津, 言曰: ‘予等生長武陵, 其島內人戶十一, 男女共六十餘, 今移居本島。 是島自東至西自南至北, 皆二息, 周回八息。 無牛馬水田, 唯種豆一斗出二十石或三十石, 麥一石出五十餘石; 竹如大椽; 海錯果木皆在焉。’ 竊慮此人等逃還, 姑分置于通州、高城、杆城。”

Ulleungdo Map from a 1750's Atlas:



Sambongdo's Neighboring Island (Jukdo)

Koreans also claim that Sambongdo (三峯島) was an old name for "Dokdo," but Sambongdo was just another name for Ulleungdo, which has three prominent peaks that are mentioned quite often in old Korean documents. "Sambongdo" means "Island of Three Peaks."

The following is from an August 30, 1479 entry from the Annals of King Seongjong. In the entry, Korean officials are discussing how to remove illegal squatters on Sambongdo. The officials mention a small island next to Sambongdo where two families are living. It is suggested that the small island be captured first, which would give the soldiers time to assess the situation on Sambongdo before trying to capture that island's people. It was first suggested that 1,500 soldiers be used to take the island of Sambongdo, but one of the officials felt that was too many and said that 300 or 400 could do it. Of course, the Sambongdo being referred to was Ulleungdo, and the small neighboring island was almost certainly Jukdo, not Liancourt Rocks.

1479 Entry from the Annals of King Seongjong (1479年 8月 30日 - 成宗 107券)

"영안도 경차관 신중거와 삼봉도 토벌·초무를 의논하다"

명하여 증경 정승(曾經政丞)과 부원군(府院君) 등을 불러 선정전(宣政殿)에 나아가 인견(引見)하고, 또 영안도 경차관(永安道敬差官) 신중거(辛仲琚)를 불러 들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삼봉도(三峯島) 사람이 관군(官軍)에게 저항하는 기세가 있어, 경(卿) 등과 더불어 의논하여서 처리하고자 한다.”

하니, 좌승지(左承旨) 김승경(金升卿)이 아뢰기를,

삼봉도 곁에 소도(小島)가 있는데 전군자(全君子) 등의 2호(戶)가 도망하여 그 가운데에 살고 있습니다. 만약에 본도(本道)의 사람을 모집하여 그 뜻하지 않을 때에 갈 것 같으면, 삼봉도 사람이 미처 깨닫기 전에 소도(小島)의 두 집을 취할 수 있습니다. 그런 다음에 그 형세를 살펴서 사람을 보내어 토벌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고, 정창손(鄭昌孫)은 말하기를,“삼봉도 사람이 알고서 내습(來襲)하면 어찌하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만약에 그렇다면 관군(官軍)이 욕(辱)을 볼까 두렵다.”

하였다. 도승지(都承旨) 홍귀달(洪貴達)이 아뢰기를,“

5진(鎭)9884) 의 인성(人性)은 본래 공(功)을 탐(貪)하므로 적(賊)이 만약 범경(犯境)하면, 타경(他境)으로 하여금 알지 못하게 하고서 스스로 그 공(功)을 독차지하려고 할 것이니, 만약 중한 상(賞)으로써 모집하면 반드시 취하는 자가 있을 것입니다.”

하고, 신중거(辛仲琚)는 말하기를,

“삼봉(三峯)의 수로(水路)는 5월·9월은 바람이 순조롭고 바다가 맑으니, 이 때라야 갈 만합니다. 만약 그렇다면 영안도(永安道)는 도로(道路)가 아득하게 막혔으니, 금년 9월에 미처 가지 못할 것 같습니다.”

하고, 정창손은 말하기를,

“반드시 들어가 토벌해야 한다면 늦출 수 없습니다. 만약 저 사람들로 하여금 우리가 장차 토벌할 것을 알게 하여서 방비가 있으면 크게 불가합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대거(大擧)하여 속히 토벌함이 마땅하니, 전졸(戰卒) 1천 5백을 씀이 어떻겠는가?”

하였다. 우부승지(右副承旨) 채수(蔡壽)가 아뢰기를,

“이 정도의 수(數)는 필요가 없습니다. 비록 3,4백이라도 가(可)할 것입니다. 그러나 북쪽 사람은 모두 마상선(麻尙船)9885) 을 사용하는데, 창망(蒼茫)한 큰 바다를 어찌 마상선으로써 군사를 건널 수 있겠습니까? 또 저 섬[島]의 지세(地勢)가 험하고 평이한 것과 사는 사람의 많고 적음도 알지 못하니, 대군(大軍)을 함부로 동원하여 불측(不測)한 모험을 무릅쓰는 것은 옳지 못할 것 같습니다.”

하고, 신중거가 아뢰기를,

“들으니, 어명산(魚命山)이 도망하여 들어갔을 때에 남의 초마선(哨麻船)을 훔쳐타고 갔다고 합니다.”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수로(水路)는 며칠 길이 되며 그 섬에 배를 정박할 곳은 몇 군데나 있는가?”하였다. 신중거가 대답하기를,“

사람이 말하기를, ‘이틀 길이고, 배를 정박할 곳도 많이 있다.’고 합니다.”

하고, 우승지(右承旨) 이경동(李瓊仝)이 아뢰기를,“

저들도 우리 나라 사람이니, 어찌 관병(官兵)에게 저항 할 리가 있겠습니까? 사람을 보내어 초무(招撫)함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그 사람들이 관역(官役)을 일삼지 않고 안업(安業)하면서 사는데, 그들이 즐겨 오겠는가?”

하였다. 홍귀달이 말하기를,

“만약에 초무(招撫)하려면 한 가지 방법이 아니고, 반드시 이해(利害)를 개진(開陣)하여 다방면으로 유도해야 할 것입니다. 다만 이제 9월이 이미 박두하였으므로, 전함(戰艦)의 모든 일은 반드시 미처 판비하지 못할 것이니, 명년(明年) 2,3월을 기다려 보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도승지(都承旨)가 말한 것은 마땅하다. 이 일은 끝내 비밀히 할 수가 없으니, 이제 감사(監司)와 절도사(節度使)에게 유시하여 전함(戰艦)을 준비하게 하고, 군사를 크게 동원한다고 소문을 내면 저들이 혹 귀복(歸服)할 이치도 있을 것이다.”

하자, 모두 말하기를,

“상교(上敎)가 진실로 지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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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命召曾經政丞及府院君等, 御宣政殿, 引見, 又召永安道敬差官辛仲琚以入。 上曰: 三峯島人, 有拒敵官軍之勢, 欲與卿等議處置。” 左承旨金升卿啓曰: “三峯島旁有小島, 全君子等二戶, 逃居其中。 若募本道之人, 出其不意而往, 則可及三峯島人未覺之時, 取小島兩家矣。 然後審其形勢, 遣人討之何如? 鄭昌孫曰: “三峯島人, 無乃覺而來襲乎?” 上曰: “若然則官軍恐受辱矣。” 都承旨洪貴達啓曰: “五鎭人性, 本貪功, 賊若犯境, 欲使他境不知, 而自專其功, 若募以重賞, 必有取之者。” 辛仲琚言: “三峯水路, 五月九月風便海淸, 獨於此時可往。 若然則永安道, 道路遙隔, 今年九月, 似未及往也。” 昌孫曰: “若必入討, 則不可緩也。 若使彼人, 知我將討, 而有備, 則大不可也。” 上曰: “當大擧速討, 用戰卒一千五百若何?” 右副承旨蔡壽啓曰: “不須此數。 雖三四百可矣。 然北人皆用麻尙船, 蒼茫大海, 安可以麻尙船濟師哉? 且不識彼島地勢險夷, 居人多寡, 輕擧大軍, 以冒不測之險, 似未便。” 辛仲琚啓曰: “聞魚命山逃入時, 竊人哨麻船騎去矣。” 上曰: “水路幾日程, 其島泊船處有幾?” 仲琚對曰: “人言可二日程, 泊船處, 亦多有之。” 右承旨李瓊仝啓曰: “彼亦我國人, 安有拒敵官兵之理乎? 遣人招撫何如?” 上曰: “其人不事官役, 安業而居, 其肯來乎?” 洪貴達曰: “若招撫, 則非一端, 必開陳利害, 多方以誘之矣。 但今九月已迫, 戰艦諸事, 必不及辦, 待明年二三月遣之何如?” 上曰: “都承旨所言當矣。 此事終不可密, 今諭監司及節度使, 使備戰艦, 聲言大擧, 則彼或有歸服之理。” 僉曰: “上敎允當。”

4 comments:

  1. どなたか漢文の分かる方、以下の訳を校正して頂けませんか?原文はGerryの本文中にある"1479年 8月 30日 - 成宗実録 107券"です。

    I translated "1479年 8月 30日 - 成宗実録 107券" into Japanese. Could someone check my translation?

    曾經政丞及び府院君等に命じて呼び、宣政殿に引き合わせ、また、永安道敬差官の辛仲琚を呼び入れた。

    宣政殿が言うには、“三峯島人が官軍に抵抗する勢いがあるので、卿などとともに議論して処理て欲しい。”

    左承旨の金升卿が申し上げるには、“三峯島の傍らに小島があり、全君子達ニ家族が逃げてその中に住んでいます. もし本道を募って(こちらの島を先に)不意打ちを掛ければ、三峯島の人が気付く前に小島の二家族を捕獲できます。その後にその形勢を観察して人を送って討伐するのはいかがでしょう?”

    鄭昌孫は言った。“三峯島の人が気がついて来襲してきたらどうしますか?”

    宣政殿が言うには、“もしそんなことになれば、官軍は恥辱を受ける事を恐れる。”

    都承旨の洪貴逹が申し上げるには、

    五鎭(地名?)人の性格は、そもそも軍功を貪るので、もし賊が越境侵犯を犯すなら、犯境)すれば, 他頃(他境)にとって分からないようにして自らその球(功)を独り占めしようと思うはずだから, もし中限上(賞)として募集すれば必ず酔う者がいるでしょう.”

    辛仲琚が言うには、“三峯への航路は、 5月・9月は風がよく、海が清いので、その時期には渡海が可能でしょう。そうであるなら、永安道は距離が遥か遠くなので、今年 9月にはまだ行くことができません。”

    鄭昌孫はこう言った。“必ずその島へ入って行って討伐しなければならない。延期など出来ません。彼等にもし我々が将来討伐すると知られて防備されれば、もう全く不可能です。”

    宣政殿が言うには、“大挙して行き、速く討伐することが当然である。兵士千五百を使うのはどうだろうか?”

    右副承旨の蔡寿が申し上げた。“そのような人数は必要がないです。例え三、四百人でも可能でしょう。しかし北部の人間は皆、麻尚船を使うのに、蒼茫たる大海を(馬上船として軍事を統帥)安全に渡れるでしょうか? しかも、島の地勢が険しいのか、どれほど多くの人が暮らすのかも分かっておらず、大軍をむやみに動員して不測の冒険をすることは正しくないようです。”

    辛仲琚が申し上げるには、“聞くところによると、魚命山が逃げ入った時、他人の哨麻船に乗って言ったらしいです。”

    宣政殿が言うには、“航路は何日で、その島は舟を停泊させる所は何箇所もあるか?”

    辛仲琚が申し上げるには、“ある人が言うには、‘二日程で、舟を停泊する所も多くある’とのことです。”

    右承旨の李瓊仝が申し上げるには、“彼らもまた、我が国の人なのに、官兵に抵抗するわけがありますか? 誰かを派遣して招撫しては如何でしょうか?”

    宣政殿が言うには、“その人々は官役(賦役?)空逃れて安心して暮しているのに、 彼らがすぐに納得して来るだろうか?”

    洪貴逹が言うには、“もし招撫するとしたら、一つの方法ではなくて、どんな利害があるのかを示してして多方面で誘導しなければならないでしょう. ただもう 9月がもう差し迫ったので、戦艦のもろもろのことがあり、必ずしも用意が出来ないでしょうから、年が明けた2月か3月を待って送るのはどうですか?”

    宣政殿が言うには、“都承旨が言うことは当たっている。この事はいつまでも秘密に出来ないだろうから、そろそろ監司と節度使を諭して戦艦を準備し、軍を大挙して動員するとうわさを立てれば、彼らがもしかすると帰服するかもしれない。”

    皆が言うには“上の言う通りでござい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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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Kaneganese,

    Your translation seems to be great! I don't know better translater than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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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Thanks pacifist!

    I used Korean translator and used the result as a base sentence. Since I don't know much Korean names, official names, rank names, it was not easy for me.
    I still have some difficulty in some sentences. I had already translated other part of Gerry's post, but I will post it later anyway. I want your Korean post come top at least for a while so that more young Koreans could have a chance to see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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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Kaneganese,

    I will try to translate the 1479 document into English this week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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