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tudy of the territorial dispute between Japan and Korea over Liancourt Rocks, a small cluster of barren, rocky islets in the Sea of Japan that Japanese call Takeshima and Koreans call Dokdo.
서면 태하리 해안에서 멀지 않은 계곡 안쪽에 있는 광서명 각석문(문화재자료 제411호)은 지상에 노출되어 있는 거대한 바위면에 새겨진 글자다. 가로 160cm, 세로 170cm의 넓이에 연대를 달리한 7행의 글씨가 있다. 글씨 크기는 10cm 내외다. 이 각석문은 1890년(고종 27)과 1893년(고종 30)의 기록이다.
태하리 임오명 각석문
서면 태하리의 임오명각석문(문화재자료 제412호)은 해안 암벽에 새겨진 글자다. 서로 5m 가량 떨어져서 3곳에 기록이 있다. 1개소에는 가로로 ‘울릉도(蔚陵島)’라 새겨져 있다. 3개소 중 가운데 것에는 ‘검찰사(檢察使) 이규원(李奎遠) 임오오월(壬午五月)’이라 새겨 두었으며, 다른 한 곳은 풍화 때문에 마멸이 심하다. 글자의 크기는 10cm 내외, ‘울릉도’라는 글자는 20cm다. 이 각석문은 1882년(고종 19) 임오년의 기록이다.
도동리 신묘명 각석문
울릉읍 도동리 신묘명각석문(문화재자료 제413호)은 1937년 도동 축항공사 때 바다에서 건져 올린 비석이다. 당시 2개가 있었으나 현재는 1개만이 남아있다. 비석은 가로 70cm, 세로 80cm의 현무암으로서 평탄면에 2단으로 글자를 새겼다. 글자의 크기는 2cm 내외로 작다. 이 각석문엔 ‘신묘오월(辛卯五月)’이라 새겨져 있어서 1711년(숙종 37)으로 추정되된다.
I'm interested in what inscription of 1890 and 1893 says.
http://san.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6/18/2008061800736_12.html
ReplyDelete태하리 광서명 각석문
서면 태하리 해안에서 멀지 않은 계곡 안쪽에 있는 광서명 각석문(문화재자료 제411호)은 지상에 노출되어 있는 거대한 바위면에 새겨진 글자다. 가로 160cm, 세로 170cm의 넓이에 연대를 달리한 7행의 글씨가 있다. 글씨 크기는 10cm 내외다. 이 각석문은 1890년(고종 27)과 1893년(고종 30)의 기록이다.
태하리 임오명 각석문
서면 태하리의 임오명각석문(문화재자료 제412호)은 해안 암벽에 새겨진 글자다. 서로 5m 가량 떨어져서 3곳에 기록이 있다. 1개소에는 가로로 ‘울릉도(蔚陵島)’라 새겨져 있다. 3개소 중 가운데 것에는 ‘검찰사(檢察使) 이규원(李奎遠) 임오오월(壬午五月)’이라 새겨 두었으며, 다른 한 곳은 풍화 때문에 마멸이 심하다. 글자의 크기는 10cm 내외, ‘울릉도’라는 글자는 20cm다. 이 각석문은 1882년(고종 19) 임오년의 기록이다.
도동리 신묘명 각석문
울릉읍 도동리 신묘명각석문(문화재자료 제413호)은 1937년 도동 축항공사 때 바다에서 건져 올린 비석이다. 당시 2개가 있었으나 현재는 1개만이 남아있다. 비석은 가로 70cm, 세로 80cm의 현무암으로서 평탄면에 2단으로 글자를 새겼다. 글자의 크기는 2cm 내외로 작다. 이 각석문엔 ‘신묘오월(辛卯五月)’이라 새겨져 있어서 1711년(숙종 37)으로 추정되된다.
I'm interested in what inscription of 1890 and 1893 says.
And it looks like 1711 stone was found in 19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