連合国の旧日本領土処理に関する合意書は、竹島の主権を韓国に移転するとしたものである(全文はこちらをクリック)。韓国では、この合意書(以下、「合意書草案」という)について「条約草案」や「連合国の合意の証拠」とする解釈がなされているようである。しかし、このような解釈は時系列的に矛盾するとともに、竹島を放棄領土に含めなかったサンフランシスコ条約の内容とも整合しない。
1.合意書草案の位置づけ
まず、合意書草案直前の1949年11月2日の平和条約草案の領土規定について整理してみる。当条約草案では日本の領土範囲を規定した条項と共に日本が処分する領土が規定されており、処分方式は地域ごとに「割譲」と「権利・権原の放棄」の2種類に分かれている。(右図参照)- 台湾等:中国に割譲する。(Cedes to China)
- 南樺太・クリル諸島等:ソ連に割譲する。(Cedes to the Union of soviet Socialist Republics)
- 朝鮮半島等、小笠原諸島、琉球諸島:全ての権利と権原を放棄する。(renounces all right and title)
1949年11月19日 11月9日の条約草案に関する詳細な意見
修正された3条に続いて、「3条で記述された領域外において、日本は割譲又は全ての権利、権限、権原及び請求権を放棄する」で始まる条項を挿入することを提案する。
(11月2日の草案において、新たな主権者への直接的な割譲に依拠しない日本による放棄の方法が8条から12条に認められることに留意する)
我々は、11月2日の条約草案にある第4条から12条を削除し、日本の管轄下にあった従前の日本領土の処分に関する補足的な文書に日本を除く連合国間で合意することを提案する。このことにより、条約本体での直接的な割譲の必要性をなくすとともに、日本がそのために拘束され続ける必要がなくなる。
補足文書における台湾の扱いについて、カイロ宣言後に発生した中国の不安定な状況が、島の機械的な処分をも不可能にしていることを根拠に、国連信託統治の賛否を決める住民投票を考慮するよう提案する。(11月2日の草案に脚注の議論は、中国が平和条約に調印しない場合を想定したものであるが、台湾の処分の決定における重要な政治的かつ戦略的要因の処理としては不適切と思われる)
シーボルドは右図のように、「1.平和条約での日本の放棄」「2.補足文書で連合国が放棄領土に対する処分を決定」と2段階による処分方法を提案した。このような提案を行った理由として、連合国内の東西陣営間の対立による平和条約締結の遅延を恐れたためと考えられる。合意書草案の前文は、以下のとおりとなっており、シーボルドの処分方法の提案に従って作成されたものであることがわかる。
連合国の旧日本領土処分に関する合意書1950年に日本と締結した平和条約に関連する連合国及び関連する国家は、条約により日本が放棄した領土について、以下のとおり処分する。
2.合意書草案の作成年月日とベースとなった条約草案
合意書草案を発見したシン・ヨンハは1950年以降に作成されたものとしていたが、chaamieyさんのサイトによると李碩祐の研究では1949年12月19日の作成とし、「韓国の独島領有権が再び認められたもの」と解釈しているようである(李碩祐の論文を見ていないので日付を特定した根拠は不明)。前述のとおり合意書草案は条約の放棄領土に対する処分を決定するものであり、条約における放棄領土と整合してなくてはならない。合意書草案にある「豆満江の河口から約三海里にある国境の終点・・・( the seaward terminus of the boundary approximately three nautical miles from the mouth of the Tumen River)」との表現は、1947年11月2日と1949年12月29日の条約草案にしかなく、この何れかの条約草案をベースに補足文書として合意書草案が作成された。また、合意書草案にある「連合国が竹島の主権を韓国に移転する」ためには、日本が平和条約で竹島の処分権を連合国に移転済みでなければならない。条約草案の変化を時系列に整理すると以下のとおりとなる。- 1949年11月 2日条約草案:竹島が放棄領土に含まれる
- 1949年12月29日条約草案:竹島が放棄領土から除外
この内、合意書と整合するのは11年2月の条約草案であり、12月29日の条約草案とは論理矛盾をきたす。よって、この合意書が作成されたのは、シーボルドの詳細意見書の1949年11月16日~竹島を放棄領土から除外した条約草案の1949年12月29日までの間となり、李碩祐の比定した1949年12月19日である可能性が高い。
3.合意書草案への連合国の合意
独島学会ではこの条約草案に48カ国の同意があったように解釈しているように見受けられるが、連合国が合意した事実は確認されていない。合意は国を代表する者による署名等によってなされなければならない(ウィーン条約法条約第11条〜16条)。しかしながら、この合意書草案に対して、署名等の行為がなされた事実は存在しない。合意がないことは、この合意書草案の末尾にある合意の日付及び合意場所の記入欄が空白のままであることからもわかる。Done at the city of ------------in the English language,this -------day of------,1950.また、朝鮮半島の処分が書かれた第3条にも「・・・」と省略があり、この合意書が草案としても成熟したものでないことがわかる。
Dagelet Island (Utsuryo To, or Matsu Shima), Liancourt Rocks (Takeshima), and all other islands and islets to which Japan had acquired title lying outside … and to the east of the meridian 124゜15´E. longitude,
更に、アメリカが他の連合国に平和条約に関する意見照会を行ったのは、1950年9月11日の条約草案を要約した「覚書」が最初であり、それ以前に作成された条約草案等について他の連合国に配布・周知された事実は確認できない。「合意」があったとするのであれば、どの国が、いつ、どこで、どのような手段で合意したのかを示すのが学者として最低限の責務である。
4.合意書草案後の領土処分方法の推移
竹島を日本領とした1949年12月29日条約草案であるが、領土処分方法については台湾や南樺太等は従来どおりの中国等への割譲による処分方法となっている。しかしながら、1950年9月11日に作成された条約草案において「日本は、英国、ソビエト、中国、米国によってなされる将来的(to the future)な合意を承認する」と割譲方式がなくなると共に合意を将来に先送りした。11月24日の 対日講話7原則では、「条約発効後1年以内に決定されない場合には,国際連合総会が決定」と、連合国内で合意ができなかった時の対処が追加された。更に、条文が「全ての権利・権限を放棄する」と修正され、連合国の合意の存在自体が削除され条約成案となった。例えば「朝鮮の主権を韓国に移転する」とする処分に東側諸国が同意するわけもなく、現実問題として日本が放棄した後の領土処分については何ら決定することはできなかったのである。結果的にサンフランシスコ条約では、シーボルド意見書における1ステップ目(日本による領土放棄)のみが実行され、連合国による放棄領土の処分は行われなかった。なお、連合国内の紛争のため、サンフランシスコ条約で放棄領土の処分を明確にできなかったことは、ダレスも講和会議の演説で述べている。
5.サンフランシスコ条約の領土処分に関する国際法学者の解釈
国際法学者のブラウンリーは、サンフランシスコ条約の領土処分について「連合国に処分権を与えた」とし、例えば台湾について連合国が処分権を行使しなかったため主権が未確定とした。また、その後の連合国の黙認・承認によって台湾の主権が凝固されうるとしている。このブラウンリーの解釈は、シーボルドの提案した「放棄→処分」の2段階による処分の内、2段階目の処分がなされなかった事実とも合致している。
<修正履歴>
・Matsuさんの指摘を受け合意書3条の「・・・」に関する記述及び「豆満江の河口から約三海里云々」の追加と修文(2013/05/07)
6.韓国側の解釈の問題点
恐らくラスク書簡を否定するためであろうが、事実に依拠しない拡大解釈を行っている。この合意書草案に連合国が合意したとするのであれば、署名等によって連合国が合意した事実を証明することが必要である。しかし、そのような事実を存在しない。また、最終的に連合国および日本が合意したサンフランシスコ条約成案では、放棄領土から竹島は除外されている。ラスク書簡が重要なのは、サンフランシスコ条約成案と同じ文面(韓国に配布された1951年3月草案以降、朝鮮の放棄領土に関する文案は修正されていない) に対する条約起草者の意見だからである。時間を遡及し条約成案を否定する合意書草案と異なり、ラスク書簡は条約成案と整合しているのである。<修正履歴>
・Matsuさんの指摘を受け合意書3条の「・・・」に関する記述及び「豆満江の河口から約三海里云々」の追加と修文(2013/05/07)
OPPさん、投稿、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ReplyDelete署名されていない「合意」草案に、何が書かれていようと無効だと思います。
>イ・ソグの論文を見ていないので日付を特定した根拠は不明
イ・ソグ 이석우 ( 李碩祐 / Lee, Seok-Woo )
仁荷大学副教授
http://ils.inha.ac.kr/member/member_detail.aspx?EncryptedID=T0%2FrOrlADMUCEFvgNxVnVQ%3D%3D
일본의 영토분쟁과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인하대학교 출판부, 2003.
『日本の領土紛争とサンフランシスコ平和条約』(仁荷大学出版部)(2003)
これについては、以下のところで議論したことがあります。
http://dokdo-or-takeshima.blogspot.jp/2011/04/2011-apr-14-looter-in-sea-of-japan.html?showComment=1304389508047
私のコメント(Kaneganeseさん代行)(当時、私のコメントが投稿しても消えてしまって、Kaneganeseさん代行してもらっていました)
3/5/11 16:42
ちょうど同じ時期に、Chaamieyさんと私が、それぞれに翻訳していました。
Yabutarouさんが引用している文献
南基正論文「サンフランシスコ平和条約と韓日関係」
(東北亜歴史論叢 22号 2008年12月)
http://search.historyfoundation.or.kr/DATA/BBS1/%EB%85%BC%EC%B4%9D22%ED%98%B8(0).pdf
p44~45
の該当部分翻訳
一方、李碩祐(イ・ソグ)(2003)の研究によれば、米国が「1949年12月19日付、旧日本領土の処分に関する協定(Agreement respecting the Disposition of Former Japanese Territories on December 19,1949)」という形式の文書に、独島の韓国領有を認める内容が挿入されているというが、これはシーボルド意見書以後のことであり、韓国の独島領有権が再び認められたものとして注目される。李碩祐(2003)は、この草案が、文案の作成方式や規定された内容から見て、全体的なサンフランシスコ平和条約の条約規定方式とは相当な差異があることを暗示していると評価しているが、米国が対日講和条約とは別に、領土に関する協定を考慮していたのかどうかについて、研究が必要な部分である。実際に1950年5月、英連邦の日本平和条約実務班がロンドンで行った会議で合意・決定された事項の中に、「日本から分離する領土は、平和条約に言及される必要はない」という項目が入っている。12) 従って、英国も平和条約とは別途の協定で領土条項を確認する意図があったのかどうか確認して見る必要がある。
12)李碩祐(イ・ソグ)、2003前掲書、59ページ.
私も、李碩祐が何を根拠に書いているか、知りたいものです。
일본의 영토분쟁과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인하대학교 출판부, 2003.
『日本の領土紛争とサンフランシスコ平和条約』(仁荷大学出版部)(2003)
どこかにないですかね。
42p~
ReplyDelete2_ 독도 영유권 문제
둘째, 독도 영유권 문제이다.10)
10) 독도 영유권 문제와 관련해서는 이석우(2003;2005a;2005b), 정병준(2005a;
2005b), 原貴美惠(2005) 등의 연구를 참고할 만하다. 이하 미국 문서 등의 인용은
모두 위의 연구들로부터의 재인용임을 밝혀 둔다.
독도의 한국 영유로 해석될 수 있는 연합국 측
문서로 연합군 최고사령관 각서 677호와 1033호가 있다. 연합군 최고사령관
각서 SCAPIN-677(1946년 1월 29일), SCAPIN-1033(1946년 6월 22일)에는 일본의 행정구역과 어업구역의 범위에서 제주도 울릉도와 함께 독도를 제
외했다. 그러나 이는 영토에 관한 최종처리가 아니라는 단서가 붙은 것이었다.
한편 미국 삼부조정위원회 문서인 SWNCC-59/1(1946년 6월 24일)의 부록에
도, 제주도 거문도 울릉도 독도 및 조선이 독립될 조선에 귀속될 것이라고 해
석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1947년 3월 국무성 평화조약 초안에는
1장‘영토조항’1조에 일본에 귀속될 영토에 독도는 포함되지 않았고, 일본이
권리와 권원으로 포기해야 할 조선의 일부에 포함되어 있었다. 1947년 8월 초
안 및 1948년 1월 초안에도 독도는 조선의 일부로 포함되어 있었다. 1949년
10월 초안과 11월 초안에도 조선에 관한 지명 표기에 약간의 수정이 가해졌을
뿐, 기본적으로는 영토조항에 관해 이전의 초안 내용이 계승되어 있었다.
이에 변경이 가해지기 시작한 데에는 1949년 11월 초안에 대한 시볼드 주
일 정치고문 의견서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독도가 일본영토임을 명기
하도록 제안했던 것이다. 그 근거로‘역사적 정당성과 전략적 필요성’이 제시
되었다. 역사적 정당성 주장에 대해서는 일본 외무성이 1947년 6월 발행한
「태평양 및 동해의 소제도(太平洋及び日本海小諸島, 미공개문서)」라는 조서의
영향이 있었을 것이라는 해석이 유력하다. 전략적 필요성과 관련해서는 냉전
적 상황을 고려하여 미국의 군사적 필요성이 제기되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하
여 하라 기미에[原貴美惠, 2005]는 한반도가 공산화될 가능성이 있는 상황에
서 독도가 한반도에 귀속될 경우 일본에 대한 안보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점이
고려되었을 것이라는 해석을 붙이기도 한다.11) 어쨌거나 이후 독도 영유권 문
제는 명백히 한국에 불리한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11) 原貴美惠, 2005, 앞의 책, 50쪽.
1949년 12월 29일 초안의 2장‘영토조항’3조에서 일본이 영유할 도서에
독도가 포함되고 일본이 포기하게 될 조선의 범위에서 독도가 삭제되었다. 이
초안에는 전문에 명기된 서명국 리스트에 한국이 포함되어 있었다. 12월 2일
의 초안 작성시까지 서명국 리스트에 한국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던 점을 고려
하면 독도 포기에 대한 대가로 한국의 서명국 참가를 고려했던 것일 수 있다.
1950년 8월 초안에는 조약 서명국 리스트 자체가 삭제되었으며, 영토조항에
대해서는 특별한 예시 없이 일반적 방침을 확인했을 뿐이었다. 이후 미국의 초
안에서 독도에 대한 언급이 사라지게 되었다. 다만, 영국의 1951년 4월 초안(3
차 초안)에는 영토조항 제1조에 위도 경도를 사용하여 일본의 영토범위를 규
정하고 있는데, 독도는 일본의 영토범위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시볼드(William J. Sebald)는 덜레스의 마지막 일본 체류일인 1951년
4월 23일 덜레스 일행이 요시다 총리, 이구치 사다오[井口貞夫] 외무성 차관,
니시무라 구마오[西村熊雄] 외무성 조약국장 등과 함께“방금 접수한 영국 조
약초안(영국 측 3차 초안, 1951년 4월 7일-필자 주)을 검토하는 데 시간을 다
보냈다”고 회고했다. 이 자리에서 일본 측은 영국 측 문서보다 미국 측 문서를
선호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정병준(2005a)은 독도가 일본령에서 배제된 데
대한 반대 입장을 설득시키기 위한 것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런데 한
가지 특기할 사실은 영국 측 3차 초안과 지도에는‘북방 4개도서’가운데 하보
마이[齒舞] 시코탄[色丹] 등 두 개 섬이 일본영토에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는 일본 측에게 유리한 내용으로 이를 미국 측에 설득하려는 노력이 동시에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있다. 일본 측이 최종적으로 영국 측 초안에 대해 어떠한
입장을 취했었는지 궁금한 부분이다. 독도보다 북방 4개도서 문제를 더 중시
했던 일본 측으로서는 영국 측 문서를 더 의미 있게 평가했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
한편 이석우(2003)의 연구에 따르면 미국은‘1949년 12월 19일자, 이전
일본 영토의 처분에 관한 협정(Agreement respecting the Disposition of
Former Japanese Territories on December 19, 1949)’의 형식으로 된 문건
에서 독도의 한국 영유를 인정하는 내용이 삽입되어 있다고 하는데 이는 시볼
드 의견서 이후의 일이며, 한국의 독도 영유권이 다시 인정된 것으로 주목된
다. 이석우(2003)는 이 초안이 문안의 작성 방식이나 규정된 내용으로 보아 전
체적인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의 조약규정 방식과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암시
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는데, 미국이 대일강화조약과 별도로 영토에 관한 협
정을 고려하고 있었는지 여부에 대한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다. 실제로 1950년
5월, 영연방 일본 평화조약 실무반이 런던에서 가진 회의에서 합의 결정된 사
항들 가운데, ‘일본으로부터 분리된 영토는 평화조약에 언급될 필요가 없다’
는 항목이 들어 있다.12) 따라서 영국도 평화조약과는 별도의 협정으로 영토조
항을 확인할 의도가 있었는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12) 이석우, 2003, 앞의 책, 59쪽.
어쨌거나 1951년 5월의 미영 공동초안에는 일본이 포기할 조선의 범위로
제주도와 거문도 및 울릉도가 명기되어 있으나 독도가 명기되지는 않았고, 결
국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에서는 이러한 원칙이 확인되었다. 한국은 1951년
6월의 미영 공동초안 개정안에 대해 의견서를 제출하여 독도 및 파랑도의 한
국 귀속을 명기하도록 요청했으나 1951년 8월 10일 딘 러스크 국무차관보가
주미 한국대사에 전한 각서에는, 파랑도와 함께 독도의 한국 영유를 부인하는
내용이 확인되었다.
이상의 내용에서 독도 영유권 문제와 관련해서 결정적으로 그 분위기를 반
전시킨 것은 1949년 11월의 시볼드 의견서였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시볼
드의 논거는‘역사적 정당성’이 주된 것이었고, ‘냉전적 상황’은 미국 본국을
설득하기 위해 부차적으로 동원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의견서의 배경에
는 영토문제와 관련한 일본의 치밀한 사전 준비와 자료작성, 그리고 연합국의
주요 인사들에 대한 설득작업이 있었다. 결국, 독도 영유권 문제와 관련해서는
냉전의 전개는 부차적 변수였고 일본의 외교적 작업이 보다 더 결정적 변수였
다고 할 수 있다.
2_独島領有権問題
ReplyDelete二番目に、独島領有権問題である。10)
10) 独島領有権問題に関しては、李碩祐(イ・ソグ)(2003;2005a;2005b)、鄭秉峻(チョン・ビョンジュン)(2005a;2005b)、原貴美恵(2005)等の研究が参考に値する。以下、米国文書などの利用は、すべて上の研究からの再引用であることを明記しておく。
独島の韓国領有と解釈することができる連合国側の文書として、連合軍最高司令官覚書677号と1033号がある。連合軍最高司令官覚書SCAPIN-677(1946年1月29日)、SCAPIN-1033(1946年6月22日)では、日本の行政区域と漁業区域の範囲として、済州島、鬱陵島とともに独島を除外した。しかし、これは領土に関する最終処理ではないとの但し書きがついたものであった。一方、米国の三部調整委員会(訳注:国務・陸軍・海軍3省の調整委員会)の文書であるSWNCC-59/1(1946年6月24日)の付録にも、済州島、巨文島、鬱陵島、独島、および朝鮮が、独立する朝鮮に帰属するものと解釈できる内容が含まれていた。1947年3月の国務省の平和条約草案には、1章「領土条項」1条で、日本に帰属する領土に独島は含まれておらず、日本が権利と権原を放棄しければならない朝鮮の一部に含まれていた。1947年8月草案、および1948年1月草案でも、独島は朝鮮の一部に含まれていた。1949年10月草案と11月草案にも、朝鮮に関する地名表記に若干の修正が加えられただけで、基本的には領土条項については以前の草案の内容が継承されていた。
これに変更が加えられ始めたのには、1949年11月草案に対するシーボルド駐日政治顧問の意見書が決定的な役割を果たした。彼は独島が日本領土であることを明記するように提案したのだ。その根拠として「歴史的正当性と戦略的必要性」が提示された。歴史的正当性の主張については、日本の外務省が1947年6月発行した「太平洋および東海の小諸島(太平洋及び日本海小諸島、未公開文書)」という調書の影響があったという解釈が有力だ。戦略的必要性に関しては、冷戦的状況を考慮して米国の軍事的必要性が提起されたのであろう。これに関連して、原貴美恵(ハラ・キミエ、2005)は、韓半島が共産化される可能性がある状況で、独島が韓半島に帰属する場合、日本に対する安保の脅威になりうるという点が考慮されたという解釈を付け加えている。11) いずれにしろ、以後、独島領有権問題は、明確に韓国に不利な方向に展開した。
11) 原貴美恵2005 前掲書、50ページ.
1949年12月29日草案の2章「領土条項」3条で、日本が領有する島嶼に独島が含まれ、日本が放棄することになる朝鮮の範囲から独島が削除された。この草案には、前文に明記された署名国リストに韓国が含まれていた。12月2日草案作成時まで署名国のリストに韓国が含まれていなかった点を考慮すれば、独島放棄に対する代価として韓国の署名国参加を考慮したこともありうる。
1950年8月草案には、条約署名国のリスト自体が削除され、領土条項については特別な例示なしで一般的方針を確認しただけだった。以後、米国の草案からは独島についての言及が消えることになった。ただし、英国の1951年4月草案(3次草案)には、領土条項の第1条に、緯度と経度を使って日本の領土範囲を規定しており、独島は日本の領土範囲には含まれていなかった。
シーボルド(William J. Sebald)は、ダレスの最後の日本滞在の日である1951年4月23日、ダレス一行が、吉田総理、井口貞夫(イグチ・サダオ)外務省次官、西村熊雄(ニシムラ・クマオ)外務省条約局長などと共に、「たった今受けとったばかりの英国条約草案(英国側3次草案、1951年4月7日-筆者註)を検討する時間を費やした」と回顧している。この席で日本側は、英国側文書よりも米国側文書を選好したという。これについて、鄭秉峻(チョン・ビョンジュン)(2005a)は、独島が日本領から排除されたことに対して反対の立場を説得するためだったと推定している。ところで、一つ特記すべき事実は、英国側3次草案と地図には、「北方四島」の中の、ハボマイ(歯舞)シコタン(色丹)、二つの島が日本領土に含まれているという点である。これは日本側に有利な内容であり、これを米国側に説得しようとする努力が同時に行われた可能性がある。日本側が、最終的に英国側草案に対していかなる立場を取ったのか、気になる部分である。独島よりも北方四島問題をより重視した日本側としては、英国側文書を、より意味のあるものとして評価した可能性は、なくはない。
一方、李碩祐(イ・ソグ)(2003)の研究によれば、米国が「1949年12月19日付、旧日本領土の処分に関する協定(Agreement respecting the Disposition of Former Japanese Territories on December 19,1949)」という形式の文書に、独島の韓国領有を認める内容が挿入されているというが、これはシーボルド意見書以後のことであり、韓国の独島領有権が再び認められたものとして注目される。李碩祐(2003)は、この草案が、文案の作成方式や規定された内容から見て、全体的なサンフランシスコ平和条約の条約規定方式とは相当な差異があることを暗示していると評価しているが、米国が対日講和条約とは別に、領土に関する協定を考慮していたのかどうかについて、研究が必要な部分である。実際に1950年5月、英連邦の日本平和条約実務班がロンドンで行った会議で合意・決定された事項の中に、「日本から分離する領土は、平和条約に言及される必要はない」という項目が入っている。12) 従って、英国も平和条約とは別途の協定で領土条項を確認する意図があったのかどうか確認して見る必要がある。
12)李碩祐(イ・ソグ)、2003前掲書、59ページ.
いずれにしろ、1951年5月の米英共同草案には、日本が放棄する朝鮮の範囲に、済州島と巨文島、および鬱陵島は明記されているが、独島は明記されなかったし、結局、サンフランシスコ平和条約では、このような原則が確認された。韓国は、1951年6月の米英共同草案改正案に対して意見書を提出し、独島およびパラン島の韓国帰属を明記するよう要請したが、1951年8月10日、ディーン・ラスク国務次官補が駐米韓国大使に伝えた覚書では、パラン島とともに独島の韓国領有を否認する内容が確認された。
以上の内容から、独島領有権問題と関連して決定的にその雰囲気を反転させたのは1949年11月のシーボルド意見書だったということを確認することができる。シーボルドの論拠は「歴史的正当性」が主であり、「冷戦的状況」は、米国本国を説得するために副次的に動員されたものだった。そしてこの意見書の背景には、領土問題についての日本の緻密な事前準備と資料作成、そして連合国の主要人物に対する説得作業があった。結局、独島領有権問題に関しては、冷戦の展開は副次的な変数であり、日本の外交的作業が、より決定的な変数であったと言える。
李碩祐이석우(イ・ソグ)2003『日本の領土紛争とサンフランシスコ平和条約』仁荷大学校出版部
李碩祐이석우(イ・ソグ)2005a「第2次世界大戦、平和条約、そして独島の国際法的地位(1)」『(明日を開く)歴史』20号;
李碩祐이석우(イ・ソグ)2005b「第2次世界大戦、平和条約、そして独島の国際法的地位(2)」『(明日を開く)歴史』21号;
原貴美恵2005『サンフランシスコ平和條約の盲点-アジア太平洋地域の冷戦と「戦後未解決の諸問題」』渓水社.
Matsuさん
ReplyDelete>これについては、以下のところで議論したことがあります。
実は、ご指摘の記事の4/5/11 00:51の投稿で合意書が放棄後の処分を規定したものあると考え、シーボルドの意見書との関連性に気がついて確信(28/5/11 08:49の投稿)した次第です。イマイチ皆さんに伝わってないようでしたので何時か纏めようと思って月日が過ぎてしまいました。
>私も、李碩祐が何を根拠に書いているか
私もそれが知りたいところです。李碩祐の中立性については、ちょっと疑問を持ってます。
http://digital.law.washington.edu/dspace-law/bitstream/handle/1773.1/748/11PacRimLPolyJ063.pdf?sequence=1
の左肩のページ番号でP141を見て下さい。ボグスのメモですが、「この問題に対する立場をより明確にしたメモ」として、16日ではなく13日のメモを引用しています。
なお、WIKIにシーボルドの詳細コメント、16日のボグスのメモ、1951年8月10日のダレスの電報を追加しました。
http://en.wikisource.org/wiki/Draft_Treaty_of_Peace_With_Japan
これについて、鄭秉峻(チョン・ビョンジュン)(2005a)は、独島が日本領から排除されたことに対して反対の立場を説得するためだったと推定している
ReplyDelete「日本外交文書 サンフランシスコ平和条約 対米交渉」のP397に英国草案に対する日本の逐条的見解が掲載されていますが、「英案で色丹島が日本領として残ることを明記している点はよいが、色丹に言及するからには、将来の紛議を避けるため歯舞の日本領なることも明示したい」と北方領土には拘ってますが、朝鮮の放棄領土については「わが方は異議がない」としておち、竹島については拘わっていません。
韓国人学者の「推論」は見当違いのものばかりで嫌になっちゃいますね。
OPPさん
ReplyDelete教えてください。
1行目に「全文はこちらをクリック」とありますが、原史料は、第3条付近の部分しか出ていません。
原史料の全文の画像は、どこかにあるでしょうか。
そこには
Done at the city of ------------in the English language,this -------day of------,1950.
の部分もあるのでしょう。
「合意書草案を発見したシン・ヨンハは1950年以降に作成されたものとしていたが」とある一方で、
「1949年12月19日の作成」とする李碩祐の論文については、今のところ我々は、南基正論文の孫引きしか根拠を持っていないわけです。
慎鏞廈(シン・ヨンハ)は、どこかに、発見の経緯と、原文史料を載せているのでしょうか?
そもそも、この文書には、署名が全くありません。
つまり「合意書」とは言いつつ、そうした「合意」なるものは、現実には全く存在しないわけです。
いわば
Agreement Respecting the Disposition of Former Japanese Territories(連合国の旧日本領土処理に関する合意書)と称する文書
にすぎないわけです。
ところが、韓国側は、あたかもそうした「合意」があったかのように偽っています。
上の 「独島学会ではこの条約草案に」の部分のリンクは
「猛の竹島掲示板控帳」
「11 1950年の「連合国の旧日本領土処理に関する合意書」のページですが、
http://take8591.wiki.fc2.com/wiki/11%E3%80%801950%E5%B9%B4%E3%81%AE%E3%80%8C%E9%80%A3%E5%90%88%E5%9B%BD%E3%81%AE%E6%97%A7%E6%97%A5%E6%9C%AC%E9%A0%98%E5%9C%9F%E5%87%A6%E7%90%86%E3%81%AB%E9%96%A2%E3%81%99%E3%82%8B%E5%90%88%E6%84%8F%E6%9B%B8%E3%80%8D
ここから、「総論」に行き、もとの「独島学会」のサイトに行くと
http://plaza.snu.ac.kr/~bigbear1/m2.htm
「韓国の領土 独島物語」というパンフレットが、
英語、韓国語、日本語、中国語、ロシア語、フランス語、ドイツ語、スペイン語、アラビア語で出ていることがわかります。
これの「12」は、
(日本語版)
連合国の『旧日本領土処理に関する合意書』“独島は韓国の領土だ”と規定
(英語版)
The Allies’『Agreement Respecting the Disposition of Former Japanese Territories』 rules Dokdo as a Korean territory
となっていて、あたかもこうした「合意」が存在していたように嘘をついています。
世界中に、英語、韓国語、日本語、中国語、ロシア語、フランス語、ドイツ語、スペイン語、アラビア語で、嘘をばらまいているわけです。
「猛の竹島掲示板控帳」の資料には、「12」ではなく「11」となっていて、(版が違うのでしょうか)、また内容も詳しくなっていますが、ここに、
「48の連合国及び関連国による合意文書であり」という文言があります。
これも、とんでもない嘘でしょう。
「合意文書」でもなんでもない、ただのドラフト(草案文書)をもって、歴史的事実を捏造しているわけです。
>「朝鮮の主権を『韓国』に移転する」とする処分に東側諸国が同意するわけもなく
The Allied and Associated Powers agree that there shall be transferred in full
sovereignty to “the Republic of Korea” all rights and titles to the Korean Mainland
Territory and all offshore Korean islands
と読み込んだOPPさんのご意見は、まさに卓見で、この文書が「連合国」の合意ではありえないことが明白です。
>原史料の全文の画像は、どこかにあるでしょうか。
ReplyDelete私も見つけられませんでした。李碩祐の英語論文によれば、NARAにあるようです。
State Dep't Records, Record Group 59 (Dec.19, 1949) (on file with the U.S.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in College Park, MD).
シン・ヨンハですが、『独島領有権に対する日本主張批判』(ソウル大学校出版部、2001)に地図を記載しているようです。また、2001年9月19日の世界日報に関連報道があるようです。何れも原文は未確認です。
http://dokdo-or-takeshima.blogspot.jp/2011/04/2011-apr-14-looter-in-sea-of-japan.html?showComment=1304389508047の3/5/11 13:59の投稿をご覧下さい。
>「猛の竹島掲示板控帳」の資料には、「12」ではなく「11」となっていて、(版が違うのでしょうか)
あまりにすぐにばれる嘘なので修正したのかもしれませんね。
特に英語の文献において韓国の嘘が野放しになっているので、先日開催された「領土・主権をめぐる内外発信に関する有識者懇談会」には期待してます。
ただ、中野先生が委員に入っていますが、島根県の報告書の論文を拝見すると国際法ではなく政治的な妥協(1905年に抗議しなかったとは言わない)を提言されているのが気がかりです。そういうのは政治家に任せればいいと思うのですがね。
Kaneganeseさん
ReplyDelete上のOPPさんのコメントにある
State Dep't Records, Record Group 59 (Dec.19, 1949) (on file with the U.S.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in College Park, MD).
というところから、原文を見ることはできないでしょうか?
どうせ、「署名もされなかったただの草案」にすぎない文書ですが、この文書をもとに韓国が世界中に嘘をまき散らしている「証拠」ともなるべきものだと思います。
Record Group 59 (Dec.19, 1949)
ということだけで、どれほど絞り込めるのかわかりませんが。
OPPさん
>李碩祐の英語論文
とは何でしょうか?(どの論文でしょうか?)
また、ご指摘の
http://dokdo-or-takeshima.blogspot.jp/2011/04/2011-apr-14-looter-in-sea-of-japan.html?
3/5/11 13:59
の投稿には、半月城氏の文章として、次のように書いてあります。
・・・・・・・・・・・・・・・・・・・・・・・・・
連合国の「旧日本領土処理に関する合議書」関連の報道が下記「世界日報」のサイトにあります。
<連合国領土合意書、独島を韓国領として処理>(韓国語)
http://search.sgt.co.kr/fbin/result.fcgi?search=??&dataid=200109192107000543
拙訳<アメリカ公文書館資料>
http://www.han.org/a/half-moon/hm088.html#No.620
・・・・・・・・・・・・・・・・・・・・・・
上の「「世界日報」のサイト」のリンクはもうつながりませんでしたが、下の半月城氏の「拙訳」には、以下のように訳してありました。
・・・・・・・・・・・・・・・・・・・・・・
--------------------
(前略)(2001年9月)18日ソウル大学社会学科、愼鏞夏教授は、1947年連
合国所属28ケ国が合意した'連合国の旧日本領土処理に関する合意書'を公開し
た.この合意書には"連合国は韓国に韓半島とその周辺の韓国の島たちに対する
完全な主権を移譲する事に合意したが、その島には済州島と巨文島,鬱陵島,独
島を含む"と言う規定が明示されている.連合国はまたこの規定を明確にするた
めに韓半島周辺の地図を作成して添付したことが明らかにされた.
最近までアメリカ公文書館に保存されて来たこの文書と地図は独島問題を
研究して来た愼教授によって最近入手された.
総5項目で構成されたこの合意書は、敗戦国である日本が韓国を含めて中
国とソ連に返還する領土とアメリカの信託統治に委任する領土に対する国際的
合意を盛っている.したがって今度発見された極秘文書と地図も独島の韓国領
有権が国際社会で法的に認められたという事実を確認してくれる決定的な証拠
となるものである.
第3項'韓国に返還する領土'は"韓半島本土とその周辺のすべての島(all
offshore Korean islands)を韓国に返還しなさい"と明示しながらその代表的
例に独島(Liancourt Rocks, Takeshima)をあげ、独島が韓国の領土なのを明ら
かにしている(以下省略)
--------------------
・・・・・・・・・・・・・・・・・・・・・・・・
そして、半月城氏は、以下のように続けます。
・・・・・・・・・・・・・・・・・・・・・・・
上の記事では合議書の作成年を1947年としています。これは、合議書がアメリカの第1次草案(1947)から第5次草案(1949)の書類綴りにすべて複写されてつづられているので、合議書の作成開始年として 1947年は妥当かもしれません。
・・・・・・・・・・・・・・・・・・・・・・・・・
このように「合議書がアメリカの第1次草案(1947)から第5次草案(1949)の書類綴りにすべて複写されてつづられている」ということであれば、この「合議書」なる文書が最初に出来たのは、1947年ということになります。
この時期の「草案」では、竹島は朝鮮側につけることになっていましたから、こうした「合意書」のドラフトが出来たとしても全く不思議はありません。
1950年、シーボルドの提案以降、となればこそ、意味があるのです。
上の南基正の論文にも、
「これはシーボルド意見書以後のことであり、韓国の独島領有権が『再び認められたもの』として注目される。」とあり、1949年にしろ1950年にしろ、シーボルトの提案以降であればこそ、「韓国の独島領有権が『再び認められたもの』」とする意味があるのですが、1947年の文書であれば、何の意味もありません。
たしかに、末尾の日付は1950と書いてあり、1949年12月19日に準備されていたものなのかも知れませんが、古い段階の考え方の文書が、そのまま残っていただけなのかもしれません。
そもそも、もし「連合国所属28ケ国が合意した」合意文書であるとするならば、これらの国の外務省には、当時の記録(合意したという記録)が残されているはずです。ところが、そんな文書が存在するという話は聞いたことがありません。もし存在するならば、韓国側は、あれだけ大規模な予算を使って「独島問題」に取り組んでいるのですから、とっくの昔に見つけ出しているはずです。
この文書はやはり「『合意書』と称する文書」にすぎないもので、そんな「合意」はなかったのだと思います。
それから、この記事では
「1947年連合国所属28ケ国が合意した'連合国の旧日本領土処理に関する合意書'」となっていますが、
猛さんのサイトの
http://take8591.wiki.fc2.com/wiki/11%E3%80%801950%E5%B9%B4%E3%81%AE%E3%80%8C%E9%80%A3%E5%90%88%E5%9B%BD%E3%81%AE%E6%97%A7%E6%97%A5%E6%9C%AC%E9%A0%98%E5%9C%9F%E5%87%A6%E7%90%86%E3%81%AB%E9%96%A2%E3%81%99%E3%82%8B%E5%90%88%E6%84%8F%E6%9B%B8%E3%80%8D
4パラグラフ目には
「(1)アメリカ単独の案ではなく、48の連合国及び関連国による合意文書であり」とあり、いつのまにか合意した国の数が「28」から「48」に増えています。
「全文」をコピペしておきます。
ReplyDeletehttp://www.kjclub.com/jp/exchange/theme/read.php?uid=102093&fid=102093&thread=1000000&idx=1&page=19&tname=exc_board_60&number=724&f=name&word=assassin
SECRET:
Agreement Respecting the Disposition of Former Japanese Territories
The Allied and Associated Powers party to the treaty of peace concluded with Japan on,1950,dispose of the territories renounced by Japan in that Treaty in the following manner :
Article 1
The Allied and Associated Powers agree that the following territories shall be returned in full sovereignty to China:
The island of Taiwan (Formosa)and adjacent minor islands, including Agincourt (Hoka Sho), Crag (Menka Sho), Pinnacle (Kahei Sho), Sanasana (Kasho To), Botel Tabago (Koto Sho), Little Botel Tabago (Shokoto Sho), Vele Reti Rocks (Shichisei seki), and Lambay (Ryukyu Sho); together with the Pescadores Islands (Hoko Shoto); and all other islands to which Japan had acquired title within a line beginning at a point in 26゜N. latitude, 121 ゜E. longitude, and proceeding and east to 122゜30 ´E. longitude; Thence due south to 21゜30´ N. latitude; thence due west through the Bashi Channel to 119゜E. longitude; thence due north to a point in 24゜N. latitude; thence northeasterly to the point of beginning. This line in indicated on the map attached to the present Agreement.
Article 2
The Allied and Associated Powers agree that the island of Sakhalin(Karafuto) south of 50 ゜N. latitude, and adjacent islands, including Totamoshiri (Kaiba To ,or Moneron), and Robbon Island (Tyuleniy Ostrov, or Kaihyo To) shall be transferred to the Union of Soviet Socialist Republics in full sovereignty.
Article 3
The Allied and Associated Powers agree that there shall be transferred in full sovereignty to the Republic of Korea all rights and titles to the Korean Mainland Territory and all offshore Korean islands, including Quelpart (Saishu To), the Nan how group (San To, or Komun Do) which forms port Hamilton (Tonaikai), Dagelet Island (Utsuryo To, or Matsu Shima), Liancourt Rocks (Takeshima), and all of her islands and islets to which Japan had acquired title lying outside … and to the meridian 124゜15 ´ E. longitude, north of the parallel 33゜N. latitude, and west of a line from the seaward terminus of the boundary approximately three nautical miles from the mouth of the Tumen River to a point in 37゜30´N. latitude,132゜40 ´E. longitude. This line is indicated on the map attached to the present Agreement.
Article 4
The Allied and Associated Powers undertake to support an application by the United States for the placing of the Bonin Islands (Ogasawara Gunto) including Rosario Island(Nishino Shima), the Volcano Islands (Kazan Retto), Parece Veln (Douglas Reef ), and Marcus Island(Minami tori Shi ma) under Trusteeship in accordance with Articles 77,79 and 83 of the Charter of the United Nations, the trusteeship agreement to designate the islands as a strategic area and to provide that the United States shall be the administering authority.
Article 5
The Allied and Associated Powers undertake to support and application of the United States for the placing of the Ryukyu Islands south of 29゜N. latitude under trusteeship in accordance with Article 77,79 and 85 of the Charter of the United Nations, the trusteeship agreement to provide that the United States is to be administering authority.
Done at the city of ------------in the English language, this -------day of ------,1950.
ここで、第一条で「中国 China」に対しては“return”という言葉が使われているのに対し、
ReplyDelete第二条の「ソ連 the Union of Soviet Socialist Republics」に対しては“transfer”という言葉が使われ、
第三条の「韓国 the Republic of Korea」にも“transfer”という言葉が使われています。
これは、どういう意味の違いなのでしょうか?
また、第一条と第三条については「図示」する、となっているのが、第二については「図示」の文言がありません。
これも何故なのでしょうか?
そもそも、この「中国」は、1950年とすると、もう「中華人民共和国」が成立していますが、台湾などを「中共政権」に「返して」しまうのでしょうか。
「中華民国」はもう台湾に逃げてきていますが、The island of Taiwan (Formosa)and adjacent minor islandsを「返して」もらうのでしょうか。
それから、ここには「尖閣」はありませんよね。
それから、「千島」はソ連にはあげないんでしょうか?
ReplyDelete>Record Group 59 (Dec.19, 1949)ということだけで、どれほど絞り込めるのかわかりませんが。
ReplyDeleteRG59は国務省のファイルという意味なのでこれだけでは絞り込めないですね。
http://www.kjclub.com/UploadFile/exc_board_59/2009/07/24/2009-06-30%2012;24;44.jpg
の左肩のNARAのスタンプが役にたちそうですが、いずれにしてもNARAまで行かないと入手はできないと思います。
>このように「合議書がアメリカの第1次草案(1947)から第5次草案(1949)の書類綴りにすべて複写されてつづられている」ということであれば、この「合議書」なる文書が最初に出来たのは、1947年ということになります。
シンヨンハはその後、「第1次草案(1947)から第5次草案(1949)が一緒に綴られているので、1950年以降に作成した」としていたので、「すべて複写されている」というのは間違いだったのではないでしょうか。
また、内容的にも合意書がシーボルドの意見書から遡ることはないと思います。1949年11月の条約草案まで存在した「ソ連へ割譲する」という表現は、合意書にある「主権を移転する」と同意です。割譲によって主権が既にソ連に移転されているのに、更に合意書で移転することはできません。
このような論理矛盾を起こすような処分をアメリカが維持しつづけたとは考えにくいです。
>第一条で「中国 China」に対しては“return”という言葉が使われている
これは、カイロ宣言の「restored」を受けてのことかもしれません。韓国は終戦時に存在しませんし、南樺太はカイロ宣言の対象にはありませんので、「移転」という言葉にしたのではないでしょうか。
また、中共と中華民国間の問題に触れないために敢えて「China」としているような気がします。
>「千島」はソ連にはあげないんでしょうか?
11月2日の草案にはクリルは南樺太と別項でソ連に割譲するとなっています。
単純に合意書作成者がつけ忘れたか、このテキストを起こした人が忘れたかだと思います。
>李碩祐の英語論文
これです。
http://digital.law.washington.edu/dspace-law/bitstream/handle/1773.1/748/11PacRimLPolyJ063.pdf
OPPさん
ReplyDelete小生の質問に丁寧に答えていただき、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
また、李碩祐の英語の論文紹介、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
この論文の116pには、Kurile Islandsが書いてあって、ちょっとこんがらかってきました。
慎鏞廈『独島領有権資料の探求』第3巻 独島研究保存協会 2000.12.23刊
ReplyDeleteの264~267pにこの資料が紹介されています。
上にOPPさんがご紹介されたサイトのものは、慎鏞廈のこの本から起こしたのではないかとも思います。若干の間違いと思われる所がありますので、慎鏞廈の本の起こしを載せておきます。
違いは、以下の通りです。
上のサイトの起こし→慎鏞廈の本
第1条
Sanasana (Kasho To)→Samasana (Kasho To)
Vele Reti Rocks (Shichisei seki)→Vele Reti Rocks (Shichisei Seki)
proceeding and east to 122゜30´E. longitude;→proceeding due east to 122゜30´E. longitude;
Thence due south to 21゜30´N. latitude→ thence due south to 21゜30´N. latitude
第2条
Robbon Island→Robben Island
第3条
Korean Mainland Territory →Korean Mainland territory
and all of her islands and islets →and all other islands and islets
and to the meridian 124゜15´E. longitude →and to the east of the meridian 124゜15´E. longitude
第4条
under Trusteeship →under trusteeship
第5条
support and application →support an application
以下、慎鏞廈の本です。
ReplyDelete・・・・・・・・・・・・・・・・・・・・・・・・
264p
第17章 連合国の対日本講和条約と独島領有権韓国帰属復活
1 「連合国の旧日本領土処理に関する合議書」(1947)
(Agreement Respecting the Disposition of Former Japanese Territories)
(352)「連合国の旧日本領土処理に関する合議書」
SECRET
AGREEMENT RESPECTING THE DISPOSITION OF FORMER JAPANESE TERRITORIES
The Allied and Associated Powers party to the treaty of peace concluded with Japan on,1950,dispose of the territories renounced by Japan in that Treaty in the following manner :
Article 1
The Allied and Associated Powers agree that the following territories shall be returned in full sovereignty to China: The island of Taiwan (Formosa) and adjacent minor islands, including Agincourt (Hoka Sho), Crag (Menka Sho), Pinnacle (Kahei Sho), Samasana (Kasho To), Botel Tabago (Koto Sho), Little Botel Tabago (Shokoto Sho), Vele Reti Rocks (Shichisei Seki), and Lambay (Ryukyu Sho); together with the Pescadores Islands (Hoko Shoto); and all other islands to which Japan had acquired title within a line beginning at a point in 26゜N. latitude, 121゜E. longitude, and proceeding due east to 122゜30´E. longitude; thence due south to 21゜30´N. latitude; thence due west through the Bashi Channel to 119゜E. longitude;
thence due north to a point in 24゜N. latitude; thence northeasterly to the point of beginning.
This line in indicated on the map attached to the present Agreement.
Article 2
The Allied and Associated Powers agree that the island of Sakhalin (Karafuto) south of 50゜N. latitude, and adjacent islands, including Totamoshiri (Kaiba To, or Moneron), and Robben Island (Tyuleniy Ostrov, or Kaihyo To) shall be transferred to the Union of Soviet Socialist Republics in full sovereignty.
Article 3
The Allied and Associated Powers agree that there shall be transferred in full sovereignty to the Republic of Korea all rights and titles to the Korean Mainland territory and all offshore Korean islands, including Quelpart (Saishu To), the Nan how group (San To, or Komun Do) which forms port Hamilton (Tonaikai), Dagelet Island (Utsuryo To, or Matsu Shima), Liancourt Rocks (Takeshima), and all other islands and islets to which Japan had acquired title lying outside … and to the east of the meridian 124゜15´E. longitude, north of the parallel 33゜N. latitude, and west of a line from the seaward terminus of the boundary approximately three nautical miles from the mouth of the Tumen River to a point in 37゜30´N. latitude,132゜40´E. longitude.
This line is indicated on the map attached to the present Agreement.
Article 4
The Allied and Associated Powers undertake to support an application by the United States for the placing of the Bonin Islands (Ogasawara Gunto) including Rosario Island(Nishino Shima), the Volcano Islands (Kazan Retto), Parece Veln (Douglas Reef ), and Marcus Island (Minamitori Shima) under trusteeship in accordance with Articles 77,79, and 83 of the Charter of the United Nations, the trusteeship agreement to designate the islands as a strategic area and to provide that the United States shall be the administering authority.
Article 5
The Allied and Associated Powers undertake to support an application of the United States for the placing of the Ryukyu Islands south of 29゜N. latitude under trusteeship in accordance with Article 77,79 and 85 of the Charter of the United Nations, the trusteeship agreement to provide that the United States is to be administering authority.
Done at the city of ------------in the English language, this -------day of ------,1950.
(解説)267p(原韓文)
ReplyDeleteこの資料は、連合国が対日本講和条約を締結するのに先立ち、旧日本の領土処理の原則を事前に合意し、定めておいた文書である。文書それ自体には日付がなく、1947年の1次草案から1949年の5次草案の書類綴に、みな複写されて綴じられていることから、1947年に作成され、合意された文書と見られる。
この文書は、全部で5項になっているが、第1項は中国に返還させる領土、第2項はソ連に返還する領土、第3項は韓国に返還する領土、第4項はアメリカの信託統治に委任する島々、第5項は琉球列島のアメリカへの信託統治委任を規定している。
第3項の韓国に返還する領土としては、韓半島本土とその周辺のすべての島(all offshore Korean islands)であるが、ここに代表的例とした中に、済州島、巨文島、鬱陵島とともに独島がリアンクルド岩島(Liancourt Rocks:Takeshima)という西洋の呼称(及び括弧の中に竹島)で、韓国に返還して韓国領土として処理されることを、極めて明瞭に明らかにしている。
連合国が、独島を韓国領土と判定し、返還させたことを克明に見せてくれる貴重な資料である。
・・・・・・・・・・・・・・・・・・・・・・・・・・・・・・・
半月城氏の「合議書がアメリカの第1次草案(1947)から第5次草案(1949)の書類綴りにすべて複写されてつづられている」という記述は、この部分からとっていると思われます。
Agreementを「合議書」としているのも、その影響を伺わせます。
慎鏞廈は、2000年12月刊のこの本の段階では、「1947年に『合意』があった」、と解釈していたようです。
のちに李碩祐の論文が出てから、1949年12月に変えているようですが。
Kurile Islandsについて、
>単純に合意書作成者がつけ忘れたか、このテキストを起こした人が忘れたかだと思います。
というところで、思わず笑ってしまいましたが、
Kurile Islandsをつけ忘れた「このテキストを起こした人」は、慎鏞廈先生かもしれませんね
英文の訂正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ReplyDelete>慎鏞廈は、2000年12月刊のこの本の段階では、「1947年に『合意』があった」、と解釈していたようです。
昔のyahooで以下の投稿があり、シンヨンハが1950に比定したと記憶してました。『独島領有権に対する日本主張批判』(ソウル大学出版部)は2002年1月くらいに発刊されているようなので、シンヨンハは都合が良いように説を変えているような気がします。
ただ、12月19日という李碩祐の比定は状況的に整合がとれるので正しいと思ってます。
〉連合国(中略)合意書
投稿者:nochonggakk 2003/ 6/ 4 12:35 メッセージ: 1993
これは henchin_pokoider01 さんの 1988 に対する返信です
〉-----------------------------------『連合国は 韓国に韓半島とその周辺の韓国の島々に対する完全な株券を 委譲すること路合議したが, その島には 済州島, 巨文島, 鬱陵島, 独島(Liancourt Rocks, Takeshima)を 含む
------------------------------------
「株券」は「主権」の翻訳ミスですね。
さて、念のためですが、「連合国の旧日本領土処理に関する合意書」の上記部分を引用されましたが、こうした連合国側文書があったことを確認して良いですね?慎鏞廈は、この合意書のなかには1947年から1949年に至る講和条約草案副本が綴じ込まれていたことから、この合意文書の成立を1950年と判断しています(『独島領有権に対する日本主張批判』335-336頁)。仮に彼の年代推定に従うと、1950年には竹島=独島は韓国領に含めると明記した連合国合意書があったにもかかわらず、1951.5の米英協議を経て、竹島の帰属が曖昧化された(米側の立場に立てば日本領と読めるように工夫された)講和条約案に落ち着いたということになります。
『独島領有権資料の探求』と『独島領有権に対する日本主張批判』では認定している事実が異なっているようです。
ReplyDelete・独島領有権資料の探求:1947年から1949年に至る各講和条約草案に合意書が綴じられていた。
・独島領有権に対する日本主張批判:合意書に1947年から1949年に至る講和条約草案副本が綴じられていた。
1947年に “the Republic of Korea” は存在しませんので、『独島領有権に対する日本主張批判』があってるように思います。
前に、
ReplyDelete李碩祐の英語の論文紹介、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
この論文の116pには、Kurile Islandsが書いてあって、ちょっとこんがらかってきました。
3/5/13 00:33
と書きました。説明します。
ご紹介していただいた李碩祐の英語の論文
http://digital.law.washington.edu/dspace-law/bitstream/handle/1773.1/748/11PacRimLPolyJ063.pdf
THE 1951 SAN FRANCISCO PEACE TREATY WITH JAPAN AND THE TERRITORIAL DISPUTES IN EAST
116pに、以下のように書いてあります。
・・・・・・・・・・・・・・・・・・・・・・・・・
7. Draft Dated December 19, 1949 (注235)
The draft dated December 19, 1949, was named "Agreement Respecting the Disposition of Former Japanese Territories on December 19, 1949."
The territorial clause on the Kurile Islands in this draft provided,
“The Allied and Associated Powers agree that the island of Sakhalin (Karafuto) south of 50' N. latitude, and adjacent islands, including . . . the Kurile Islands shall be transferred to the Union of Soviet Socialist Republics in full sovereignty.” (注236)
This provision stated that the Kurile Islands should be transferred to the Soviet Union, but it failed to clarify the definition of the Kurile Islands.
注
235 Agreement respecting the Disposition of Former Japanese Territories, supra note 19.
236 Id. art. 2.
注19(71p)
19 Agreement respecting the Disposition of Former Japanese Territories, State Dep't Records, Record Group 59 (Dec. 19, 1949) (on file with the U.S.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in College Park, MD).
・・・・・・・・・・・・・・・・・・・・・・・・・・・・・・・
一方、慎鏞廈『独島領有権資料の探求』第3巻 独島研究保存協会 2000.12.23刊
265pには
Article 2
The Allied and Associated Powers agree that the island of Sakhalin (Karafuto) south of 50゜N. latitude, and adjacent islands, including Totamoshiri (Kaiba To, or Moneron), and Robben Island (Tyuleniy Ostrov, or Kaihyo To) shall be transferred to the Union of Soviet Socialist Republics in full sovereignty.
とあります。
李碩祐の省略部分(・・・)を、
Totamoshiri (Kaiba To, or Moneron), and Robben Island (Tyuleniy Ostrov, or Kaihyo To)
と考えると、李碩祐の見たテキストにはKurile Islandsが書かれていたことになります。
>Kurile Islandsをつけ忘れた「このテキストを起こした人」は、慎鏞廈先生かもしれませんね
3/5/13 00:35
と書いたのは、その意味です。
すなわち、慎鏞廈はテキストを正確に起こしていないことになります。
あるいは、一方で、慎鏞廈の見ていた「1950年」という数字の書かれている
Agreement respecting the Disposition of Former Japanese Territories
なる資料と
李碩祐が紹介している
"Agreement Respecting the Disposition of Former Japanese Territories on December 19, 1949."
すなわち、注19にある
19 Agreement respecting the Disposition of Former Japanese Territories, State Dep't Records, Record Group 59 (Dec. 19, 1949) (on file with the U.S.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in College Park, MD).
とは、名称は同じでも、実は違うテキストなのではないか、とも思います。
慎鏞廈大先生ともあろうものが、the Kurile Islands という非常に重要な字句を「書きおとしている」とは、やっぱり考えにくいからです。
いずれにしても、原本を影印で見ない限り、そして、それがどういう状態で保存されていたのかが確実にわからない限り、
つまり、正確なテキストが確定されないままでは、議論しても空しい感じがします。
もうひとつ。
慎鏞廈のArticle 3には、「・・・」という省略部分があります。
(前略)Dagelet Island (Utsuryo To, or Matsu Shima), Liancourt Rocks (Takeshima), and all other islands and islets to which Japan had acquired title lying outside …(ママ) and to the east of the meridian 124゜15´E. longitude,(後略)
これはOPPさん紹介のサイト
http://www.kjclub.com/jp/exchange/theme/read.php?uid=102093&fid=102093&thread=1000000&idx=1&page=19&tname=exc_board_60&number=724&f=name&word=assassin
でも「・・・」になっています。
「これは、またまた、都合の悪い部分を隠蔽したか」と一瞬思いましたが、実は、このサイトに載っている原本の影印でも「・・・」になっています。
ということは、この慎鏞廈の紹介している、「1950年」Done at the city of ------------in the English language, this -------day of ------,1950.
という年代の入った「合意書」なるものは、ドラフトとしてさえ未完成の、とんでもない不完全な文書ということになります。
こんなものに、誰が「合意」するでしょうか。
李碩祐の論文に、もう一つ不思議な部分があります。
ReplyDelete132p 独島部分です。
・・・・・・・・・・・・・・・・・・・・・・・・
3. Draft Dated December 19, 1949
The draft dated December 19, 1949(注306 )was drafted as the "Agreement respecting the Disposition of Former Japanese Territories on December 19, 1949."
The territorial clause on the Liancourt Rocks in this draft provided:
The Allied and Associated Powers agree that there shall be transferred in full sovereignty to the Republic of Korea all rights and titles to the Korean mainland territory and all offshore Korean islands, including Quelpart (Saishu To), the Nan How group (San To, or Komun Do) which forms Port Hamilton (Tonaikai), Degelet Island (Utsuryo To, or Matsu Shima), Liancourt Rocks (Takeshima). (注307)
Thus, the ownership of the Liancourt Rocks was given to Korea.
306 This draft is excerpted in Memorandum, supra note 25.
307 Memorandum, supra note 25, art. 3.
25 Memorandum, State Dep't Decimal File No. FW 694.001/3-1751, State Dep't Records, Record Group 59(Mar.17, 1951) (on file with the U.S.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in College Park, MD).
・・・・・・・・・・・・・・・・・・・・・・・・・・・・・・・
不思議なことに、
"Agreement respecting the Disposition of Former Japanese Territories on December 19, 1949."
という同じタイトルの文書の出所として、
25 Memorandum, State Dep't Decimal File No. FW 694.001/3-1751, State Dep't Records, Record Group 59(Mar.17, 1951) (on file with the U.S.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in College Park, MD).
という違う文書をあげています。
しかも、上記の省略部分のある後半の文言は消えています。
この文書『連合国の旧日本領土処理に関する合意書』(Agreement Respecting the Disposition of Former Japanese Territories)の中で注目されるのは、「approximately three nautical miles」という文言です。
ReplyDeleteサンフランシスコ条約の草案を年代順にたどると、
https://sites.google.com/site/takeshimaliancourt/Home/koreanpropagandapdfdistorture/drafttreatyofpeacewithjapan
「豆満江の河口」という部分に、それまでなかった「approximately three nautical miles」という文言が入るのは、「1949.11.02日付アメリカによる草案」からです。
よって、このドラフトは、1947年段階ではなく、1949年11月2日草案の考え方にそって、同じころかそれ以降に作られたものと考えられます。
「シーボルドの勧告」は、1949年11月14日で
The Acting Political AdIviser in Japan (Sebald) to the Secretaiy of State on November 14, 1949
この勧告を受けて、次の草案で、竹島は日本側に移ります。
その草案が作られるのは、1949.12.29日付です。
この『合意書』なるドラフトは、その中に「1950」という数字があることによって、
「シーボルドの勧告によっていったん日本側に移った竹島」が、「また韓国側にもどった」という意味があるのだと思いますが、
李碩祐の発見によれば、このドラフトは1949年12月19日のものです。
よって、まだ、1949.12.29日付草案の完成前、ということになり、
この段階で、竹島を韓国側につけた「古い考え方の草案」があってもおかしくないことになります。
つまり、このドラフトが李碩祐の言うように1949年12月19日に作られたとすると、
1949.12.29日以降、草案の内容は大きく変わり、竹島は日本側になったので、この「合意書の原稿」は不要になったのだと思います。
よって、このドラフトは、破棄された。
その「破棄された不完全なドラフト」が、そのまま文書館に残っていたのではないでしょうか。
要するに、「ゴミ」だと思います。
Matsuさん
ReplyDeleteMatsu:25 Memorandum, State Dep't Decimal File No. FW 694.001/3-1751, State Dep't Records, Record Group 59(Mar.17, 1951) (on file with the U.S.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in College Park, MD).
という違う文書をあげています。
脚注25ですが、もともとは1951年3月17日の条約草案に対する脚注となっており、日付的にも整合しません。李が「脚注19」と間違えた可能性はないでしょうか?
また、海馬島と海豹島、千島列島の省略の件ですが、若干の差異がある合意書の原稿が2種類あり李が発見したものには12月19日と特定できる情報があったがシンが発見したものにはなかったと考えると、両者の日付の特定の差異の説明ができるのですが断定はできませんね。
韓国人の友人がいるという方に李の論文が手に入らないか聞いてみます。
Matsu:「豆満江の河口」という部分に、それまでなかった「approximately three nautical miles」という文言が入るのは、「1949.11.02日付アメリカによる草案」からです。
Matsu:慎鏞廈のArticle 3には、「・・・」という省略部分があります。
(前略)Dagelet Island (Utsuryo To, or Matsu Shima), Liancourt Rocks (Takeshima), and all other islands and islets to which Japan had acquired title lying outside …(ママ) and to the east of the meridian 124゜15´E. longitude,(後略)
ドラフトとしてさえ未完成の、とんでもない不完全な文書ということになります。
これは、貴重なご指摘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本文に反映させます。
私はこの合意書はシーボルドの意見に沿ってやっつけで作成しただけのものと考えています。
また、作成日付もシーボルドの意見書から12月29日の草案までの間と考えており、この点に関して李が比定した日付はあっていると考えています。
Matsuさんへ
ReplyDelete일본의 영토분쟁과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인하대학교 출판부, 2003.
『日本の領土紛争とサンフランシスコ平和条約』(仁荷大学出版部)(2003)
ですが、国会図書館にあるようです。P59を中心にコピーしてきます。私はハングルは読めませんので、お手数ですが翻訳お願いできないでしょう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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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lyDeleteOPPさん
ReplyDelete>『日本の領土紛争とサンフランシスコ平和条約』(仁荷大学出版部)(2003)
国会図書館にあるようです。P59を中心にコピーしてきます。私はハングルは読めませんので、お手数ですが翻訳お願いできないでしょうか?
了解しました。
>対日講和条約資料集
イ・ソクウ編
東北アジア歴史財団2006.12
これも楽しみ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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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lyDeleteちょっと脇道にそれますが、今日の東亜日報の記事です。
ReplyDelete1879년 日해군 측량보고서에 ‘독도’ 없었다
http://news.donga.com/Main/3/all/20130509/55015518/1
기사입력 2013-05-09 03:00:00 기사수정 2013-05-09 10:23:39
한철호 교수 日수로부 보고서 공개
“17세기부터 영토 인식 주장은 거짓”
19세기 후반 일본 해군 수로부(水路部)가 독도를 한국 영토로 인식했음을 입증하는 일본 공식 자료가 공개됐다. 17세기 중반부터 독도를 자국 영토로 인식해 왔다는 일본의 주장을 반박할 수 있는 자료다.
한철호 동국대 역사교육과 교수(동국대 대외교류연구원장)는 1879년 일본 해군 수로부의 해군 대위 기모쓰키 가네유키(肝付兼行)가 오키(隱岐) 제도를 측량한 뒤 작성한 보고서 ‘은기회항약기(隱岐回航略記)’를 8일 공개했다. 기모쓰키는 보고서에 오키 제도의 위치를 북위 35도 57분∼36도 18분, 동경 132도∼133도 23분으로 기록했다. 북위 37도 14분, 동경 131도 51∼52분에 위치한 독도는 오키 제도에 포함하지 않았다. 오키 제도는 일본 시마네 반도에서 북쪽으로 약 50km, 독도에서는 약 157km 떨어져 있다.
한 교수는 또 1879년과 1883년에 일본 군함인 쓰쿠바함이 일본 환해(環海•사방을 둘러싼 바다)를 항해하면서 전체 주항 경로를 표시한 지도(사진)도 공개했다. 쓰쿠바함의 제2회와 3회 ‘일본환해항적지도’에는 당시 일본 영토에 속한 지역만 표시되어 있을 뿐 울릉도와 독도는 그려져 있지 않다.
한 교수는 10일 동국대에서 열리는 ‘동해의 자원과 환동해 지역의 갈등’ 학술 심포지엄에서 이러한 내용을 담은 논문 ‘일본 해군 수로부의 오키 측량과 독도 인식’을 발표한다.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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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9年 日本海軍の測量報告書に「独島」なかった
http://news.donga.com/Main/3/all/20130509/55015518/1
記事入力2013-05-09 03:00:00記事修正2013-05-09 10:23:39
ハン・チョルホ教授、日本水路部の報告書公開
「17世紀から領土認識主張は偽り」
19世紀後半、日本海軍水路部が独島を韓国領土と認識したことを立証する日本の公式資料が公開された。 17世紀中盤から独島を自国領土と認識してきたという日本の主張に反論できる資料だ。
ハン・チョルホ東国大 歴史教育科教授(東国大 対外交流研究院長)は、1879年、日本海軍水路部の海軍大尉 肝付兼行(きもつきかねゆき)が隠岐諸島を測量した後作成した報告書「隠岐回航略記」を8日公開した。肝付は、報告書に、隠岐諸島の位置を北緯35度57分~36度18分、東経132度~133度23分と記録した。北緯37度14分、東経131度51~52分に位置する独島は隠岐諸島に含まなかった。隠岐諸島は日本の島根半島から北に約50km、独島からは約157km離れている。
ハン教授はまた、1879年と1883年に日本の軍艦である筑波艦が日本環海(四方を囲んだ海)を航海しながら、全体周航経路を表示した地図(写真)も公開した。筑波艦の第2回と3回「日本環海航跡之図」には、当時の日本領土に属した地域だけが表示されているだけで、鬱陵島と独島は描かれていない。
ハン教授は、10日東国大で開かれる「東海の資源と環東海地域の葛藤」学術シンポジウムでこのような内容を含んだ論文「日本海軍水路部の隠岐測量と独島認識」を発表する。
シン・ソンミ記者savo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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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일본 영토에 속한 지역만 표시되어 있을 뿐
当時の日本領土に属した地域だけが表示されているだけで、
1883年(明治16年)には、千島列島は日本領土だったはずですが、表示されていませんね。
1905年の竹島編入(無主地先占)以前ですので、書かれていなくても当然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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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lyDelete1879年(明治12年)に、ようやく日本海軍が隠岐へ行って測量したんですね。
ReplyDelete明治13年の軍艦天城の鬱陵島(松島)測量の一年前のことですね。
のち1905年、竹島編入の時の水路部長である肝付兼行は、海軍大尉だったこの時、隠岐の人から、昔の竹島(鬱陵島)渡海の話を聞いていたでしょうか。
>1879年(明治12年)と1883年(明治16年)に日本の軍艦である筑波艦が日本環海を航海
写真がありますが、こんな帆船(もとイギリス海軍の木造船)で行ったんですね。
軍艦 筑波
http://ja.wikipedia.org/wiki/%E7%AD%91%E6%B3%A2_(%E3%82%B3%E3%83%AB%E3%83%99%E3%83%83%E3%83%88)
筑波(つくば)は、日本海軍の軍艦、木造コルベット。元イギリス海軍所属の「HMS マラッカ」(HMS Malacca)で、兵部省が購入。スクリュー付き機帆走木造スループである。1871年に日本海軍がイギリス人から購入し、「筑波」と改名された。1887年までの正式名は「筑波艦」である。
竣工 1854年(嘉永7年)
OPPさん
ReplyDeleteメールしました。ご確認ください。
李碩祐で国会図書館のOPACを検索すると5件出てきますが、韓国語のものは、みな関西館にあるようですね。
https://ndlopac.ndl.go.jp/F/J1Y8JPPU99P5CLSJADGEBJE83TYPQ7UYDCFJCJFHDNJL5ERBXS-32305?func=find-b&request=%EF%A7%A1%E7%A2%A9%E7%A5%90&find_code=WRD&adjacent=N&filter_code_4=WSL&filter_request_4=&x=76&y=8
朝鮮日報の日本語版記事もありました。
ReplyDelete「韓哲昊(ハン・チョルホ)院長」の漢字表記がわかります。
東亜日報も朝鮮日報も全く同じ内容の記事で、「大本営発表」をそのまま報道する韓国のマスコミの報道ぶりがよくわかります。
・・・・・・・・・・・・・・・・・・・・・・・・・・・・・・・・・・・・
独島:日本の主張覆す19世紀資料、韓国で公開20130509
http://www.chosunonline.com/site/data/html_dir/2013/05/09/2013050900938.html
日本海軍の測量報告書「隠岐回航略記」
写真提供=東国大学
「17世紀から独島(日本名:竹島)を自国領と認識してきた」という日本の主張を覆す資料が新たに見つかった。
東国大学対外交流研究院の韓哲昊(ハン・チョルホ)院長(歴史教育科教授)は8日、日本海軍の水路部が1879年に作成した測量報告書「隠岐回航略記」を公開した。測量責任者だった肝付兼行は報告書で、隠岐諸島の位置を「北緯35度57分-36度18分、東経132度-133度23分」と記録しているが、これは北緯37度14分、東経131度51-53分という独島の位置とは全く異なる。独島は隠岐諸島に属するという現在の日本政府の主張とは異なり、当時の日本は独島を自国領に含めていなかったというわけだ。
韓院長は、こうした認識は1879年と83年に日本海軍の筑波艦が日本列島の周囲を航海して航路を示した地図にも表れていると説明する。特に、83年の地図「筑波艦第3回日本環海航跡之(の)図」(写真)では、琉球や遠い太平洋の小笠原諸島までが描かれているにもかかわらず、独島の表示はない。
兪碩在(ユ・ソクチェ)記者
朝鮮日報/朝鮮日報日本語版
Matsuさんへ
ReplyDeleteおかしいな。まだメールが届いてないようです。
国会図書館の本は関西館から東京本館に取り寄せて頂いているので、入手できるのは来週になります。資料集のほうは部分的に着色加工がされてますが原本影印なので、期待大です。
http://www.kobay.co.kr/servlet/wsauction/item/itemView;jsessionid=BDGIJLHEIHJL?item.itemseq=1206CRGOIHN
入手でき次第Matsuさん及び関係者にメールします。
なお、李碩祐の英語論文によれば、1949年12月8日の草案で既に竹島が日本領になっていたことになっており、私の作成日に関する仮説が崩れてしまいますね。ただ、出典がBoggsのメモからの引用となっており状況がよくわからないです。このあたりの疑問も資料集で解消できればいいのですが。
あと「隠岐回航略記」については、いつものパターンですね。地図の未掲載は主権がないことの証明にならないことはペドラブランカ島の判例でも明確にされてます。このような証拠能力のないものにすがるしかないんでしょうけど。
OPPさん
ReplyDeleteさきほどメールを再送しました。メールが相手に届いていない、という反応は、いちども帰って来ていないので、もしかしてスパムに入っていないでしょうか?
李碩祐の英語論文をコピペ可能にしたので、下に12月8日の「草案」を写しておきます。1949年12月29日の提案を前に、まさに、この時から、竹島は日本側に移るわけで、画期的な文献だと思います。
次の12月19日の、いま問題にしている「合意書」なる文献が、「不完全なドラフト」にすぎないのに比べて、アメリカのどの部分の意見が反映された文書なのか、確認する必要があると思います。
このあたりは、私はよく知らないところなので、英語の機関名の専門用語の訳を教えてください。
Memorandum from Samuel W. Boggs, Special Advisor on Geography, Office of Intelligence Research,
to Maxwell M. Hamilton, U.S. Representative on the Far Eastern Commission,
and Robert A. Fearey, Bureau of Far Eastern Affairs,
というのは、
「情報研究事務所の地理学特別助言者のSamuel W. Boggsが、
極東委員会アメリカ代表のMaxwell M. Hamiltonと
極東事務局のRobert A. Feareyの2人に送ったメモ」
ということになるのでしょうか?
Samuel W. Boggsは、シーボルドの提案をすでに受け入れて、この案を作成した、ということでしょうか?
この3人は、ともにワシントンにいるんですか?
Boggsは学者で、HamiltonとFeareyは行政官でしょうか?
・・・・・・・・・・・・・・・・・・・・・・・・
131p~132p
2. Draft Dated December 8, 1949
The territorial clause on the Liancourt Rocks in the draft dated on
December 8, 1949, 注303 provided:
The territory of Japan shall comprise the four principal Japanese home islands of Honshu, Kyushu, Shikoku and Hokkaido and all adjacent minor islands, including the islands of the Inland Sea (Seto Naikai); Tsushima, Takeshima(Liancourt Rocks), Oki Retto, Sado, Okujiri, Rebun, Riishiri
and all other islands in the Japan Sea (Nippon Kai) within a line connecting the farther shores of Tsushima, Takeshima and Rebun. 注304
From this draft, it is apparent that the drafters of the San Francisco Peace Treaty began to recognize Japanese ownership of the Liancourt Rocks.
Also, it should be noted that there was a U.S. memorandum providing: "The basic concept of the San Francisco Peace Treaty is that the treaty should be as brief and general as possible." 注305
This seems to be reflected in the subsequent drafts.
注
303 This draft is excerpted in Draft Treaty of Peace with Japan, Territorial Clauses, supra note 18.
304 Draft Treaty of Peace with Japan, Territorial Clauses, supra note 18, art. 3.
305 Memorandum from Maxwell M. Hamilton, U.S. Representative on the Far Eastern Commission, in DOS/FE, State Dep't Records, Record Group 59 (Nov. 7, 1949) (on file with the U.S.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in College Park, MD).
71p
18 Memorandum from Samuel W. Boggs, Special Advisor on Geography, Office of Intelligence Research, to Maxwell M. Hamilton, U.S. Representative on the Far Eastern Commission, and Robert A. Fearey, Bureau of Far Eastern Affairs, Draft Treaty of Peace with Japan, Territorial Clauses, State Dep't Records, Record Group 59 (Dec. 8, 1949) (on file with the U.S.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in College Park, MD) [hereinafter Draft Treaty of Peace with Japan, Territorial Clauses].
Matsu wrote:
ReplyDelete"From this draft, it is apparent that the drafters of the San Francisco Peace Treaty began to recognize Japanese ownership of the Liancourt Rocks."
Who was "the drafters" in the sentence you wrote. U.S. or the Allied Powers? It’s important to clarify it to understand correctly the process of drafts of SF Peace Treaty.
Matsuさん
ReplyDelete原貴美恵の本では、ボグスは地理学特別顧問になってますね。
Office of Intelligence Researchは、インターネットではみあたりません。情報調査室でしょうか。
Bureau of Far Eastern Affairsは、国会図書館のサイトでは国務省極東局にしてます。
Matsu:Samuel W. Boggsは、シーボルドの提案をすでに受け入れて、この案を作成した、ということでしょうか?この3人は、ともにワシントンにいるんですか?Boggsは学者で、HamiltonとFeareyは行政官でしょうか?
Feareyは行政官ですね。Boggsもwikiでは修士の後、国務省入省となっていますので行政官ではあると思います。
Boggsは条約草案の担当ではないので、12月8日に草案を送ったというのは腑に落ちないです。12月8日のは「草案」ではなく、「草案」に対するBoggsの意見書じゃないかと思うのですがね。
OPPさん
ReplyDelete連絡がついてよかったです。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原貴美恵『サンフランシスコ平和条約の盲点』(平成17 2005)には索引がついていて助かります。
44pに「地理学特別顧問サミュエル・W・ボッグス」が出てきますね。
ここで彼は、1947年8月5日草案の起草に関わっているように書いてありますから、ボッグスは、早い段階からの「起草者」の 一人ではないでしょうか。
注46
Office Memorandum, From Boggs to Fearey, July 24,1947,RG59, Decimal File 1945-49, box 3513, NA
もう一か所
233pにもありました。
「近い将来の講和予備会談を予想して作成された(1947年)7月の改訂草案では、・・・表現がより詳細になっていた。草案の起草者である情報研究室地理学特別顧問のサミュエル・ボッグスから極東局のロバートA・フィアリーに宛てた解説によると、・・・日本語名の記述を行わなかったとしている。」
「情報研究室 地理学特別顧問のサミュエル・ボッグス」とありますね。
ボッグスは、少なくとも、1947年7月草案段階から関わっているようです。(あるいは、最初から?)
「情報研究室」は国務省の中の組織でしょうか
注25
RG59, Decimal File 1945-49, box 3513, NA
このbox 3513は、上と同じ「箱」ではないかと思いますが、この「RG59」と、李碩祐のが上であげている「Record Group 59」は、同じものではないでしょうか?
フィアリーも索引にあり、さきほどの233pは
「極東局のロバートA・フィアリー」
55pには
「実務レベルでの条約草案作成の全過程に関ってきた北東アジア局のロバート・フィアリー」
とあります。
56pには
「米国務省のフィアリー」
96pには
「ワシントンにおける仏大使館員との会談」に関わって「ロバート・A・フィアリー」が登場します。
この注18の文献
Memorandum from Samuel W. Boggs, Special Advisor on Geography, Office of Intelligence Research, to Maxwell M. Hamilton, U.S. Representative on the Far Eastern Commission, and Robert A. Fearey, Bureau of Far Eastern Affairsは
「実務レベルでの条約草案作成の全過程に関ってきたロバート・フィアリー」あてに
「(1947年)7月草案の起草者であるサミュエル・ボッグス」から書いているメモ
となります。
実務レベルで、実際に草案作成にあたった人たちのやりとりとなると思います。
Sloww,
ReplyDeleteIt is not me but Prof. Seok woo Lee(李碩祐)of Inha(仁荷)University who wrote that comment.
You can see it on p132 of the article as shown before.
http://digital.law.washington.edu/dspace-law/bitstream/handle/1773.1/748/11PacRimLPolyJ063.pdf
Seokwoo Lee(2002)
THE 1951 SAN FRANCISCO PEACE TREATY WITH JAPAN AND THE TERRITORIAL DISPUTES IN EAST ASIA
Matsu,
ReplyDeleteOK. It was not what you wrote. Sorry about that.
Let me just cite what Prof.Lee wrote after the part you cited.
3. Draft Dated December 19, 1949
The draft dated December 19, 1949306 was drafted as the "Agreement
respecting the Disposition of Former Japanese Territories on December 19,
1949." The territorial clause on the Liancourt Rocks in this draft provided:
The Allied and Associated Powers agree that there shall be transferred in
full sovereignty to the Republic of Korea all rights and titles to the
Korean mainland territory and all offshore Korean islands, including
Quelpart (Saishu To), the Nan How group (San To, or Komun Do) which
forms Port Hamilton (Tonaikai), Degelet Island (Utsuryo To, or Matsu
Shima), Liancourt Rocks (Takeshima).
Thus, the ownership of the Liancourt Rocks was given to Korea.
注
306 This draft is excerpted in Memorandum, supra note 25.
307 Memorandum, supra note 25, art. 3.
Sloww,
ReplyDeleteYes, we are just talking about this document.
See the title post and our comments before 7/5/13 13:34
I have already commented about “3. Draft Dated December 19, 1949”
Note 25 of Prof. Lee is something mismatching.
Matsuさんへ
ReplyDelete1949年当時は、Boggsは条約草案の直接的なライター及び意思決定者ではないと考えます。一番大きな理由としては、Boggs自体が12月29日の草案をしらなかったことです。
http://en.wikisource.org/wiki/Spratly_Island_and_the_Paracels,_in_Draft_Japanese_Peace_treaty_dated_July_13,_1951
The Liancourt Rocks (Takeshima) were among the islands to which, in a 1949 draft treaty, Japan would have renounced claim Korea.
http://en.wikisource.org/wiki/SSpratly_Island_and_the_Paracels,_in_Draft_Japanese_Peace_treaty_dated_July_16,_1951
By one 1949 draft treaty with Japan, the Liancourt Rocks (Takeshima) were to have been renounced to Korea; by another draft at about the same time they were to be named as being retained by Japan.
Boggsは、1949年12月29日の草案の存在を7月13〜16日の間に知ったと考えるしかないと思います。
他に、草案は国務省極東局を中心として作成されBoggsに直接的な指示権がないことや、条約が領土以外のことも扱っていることも理由にあります。
OPPさん
ReplyDelete引用された2つ目の文章(July_16,_1951)で、ボッグスは、
1949年には異なる草案がふたつあって、片方では竹島はKoreaにつき、片方では竹島は日本についている、と言っています。
これは
1949年11月2日草案(シーボルト意見書の前)=竹島はKorea
1949年12月29日草案(シーボルト意見書のあと)=竹島は日本
のことを言っているのだと思います。
ボッグスはそれを「知らない」のではなくて、逆に、文書の相手(フィアリー)にそのことを「確認している」のではないでしょうか。
1つ目の文章(July_13,_1951)も、
日本がKoreaに対して放棄した島の一つがThe Liancourt Rocks (Takeshima)だといっていますが、ここで言う1949年の草案(a 1949 draft treaty)とは、11月2日の草案のことだと思います。
また、1947年の外務省の文書についても
In a Japanese Foreign Office publication, entitled "Minor Islands Adjacent to Japan Proper" Part 4, June 1947, Liancourt Rocks are included.
と言っていて、July_13,_1951の段階でBoggsが竹島は日本だ、と言っているのは貴重な証言だと思います。
ヤン・ユチャン韓国大使が、ダレスに対して竹島とパラン島を要求するのが、この直後の1951年7月19日ですよね。
Matsuさん
ReplyDelete7月13日は、
It may therefore be advisable to name them specifically in the draft treaty, in some such form as the following (Article 2):
(a) Japan, recognizing the independence of Korea, renounces all right, title and claim to Korea, including the islands of Quelpart, Port Hamilton, Dagelet, and Liancourt Rocks.
と続いています。Boggsは12月の草案に基づき放棄領土に竹島を追加することを提案しています。すなわち、Boggsは、竹島は韓国領であるとの認識になります。ここでいう12月の草案は、竹島を放棄していなければなりませんのでご指摘にように11月2日の草案だと思います。
しかし、その3日後に、彼は「they were to be named as being retained by Japan」と13日とは別の草案に触れ、「If it is decided to give them to Korea, it would be necessary only to add "and Liancourt Rocks" the end of Art. 2, par. (a)」とアドバイスの内容を修正しました。整理すると以下のとおりです。
7月13日のBoggsの認識
・対象とする草案:11月2日の草案(竹島韓国領)
・提案内容:草案に基づき放棄領土に竹島を加える
7月16日のBoggsの認識
・対象とする草案:11月2日の草案(竹島韓国領)と12月29日の草案(竹島は日本領)
・提案内容:韓国領とするなら、放棄領土に竹島を加える
13日は、11月2日の草案に基づき竹島は韓国領との認識です。
In a Japanese Foreign Office publication, entitled "Minor Islands Adjacent to Japan Proper" Part 4, June 1947, Liancourt Rocks are included.
については、11月2日の草案に基づき韓国領であるとの7月13日時点のBoggsの認識を前提として、「日本が当該書類で竹島の領有を主張しているので、放棄領土として明記しておかないとトラブル」という主旨だと思います。
Boggsが12月29日の草案を最初から知っていたのであれば7月13日の竹島を韓国領とする提案内容との整合がとれなくなりますし、12月8日の竹島を日本領とした草案をBoggsが送ったこととも矛盾します。
このため、私は12月8日の「草案」は草案ではなくBoggsの意見であり、自分のこの意見が棄却されたと彼が思い込んでいたのだと考えています。
OPPさん
ReplyDelete私のさきほどのコメント
「July_13,_1951の段階でBoggsが竹島は日本だ、と言っている」
というのは、よく読めば、とんでもない間違いで、
Boggsは、ずっと「中立」なのだと思います。恥ずかしながら、訂正します。
7月13日
A)1949年のある一つのドラフトで日本は竹島を放棄した。
B)1947年の外務省の文書は竹島を日本領としている。
X)よって、ドラフトには日本が放棄するものとして具体的に竹島の名前をあげたほうがよい。
7月16日
A)1949年のある一つのドラフトは、竹島を韓国領としている。
C)同じころの、もう一つの別のドラフトは、竹島を日本領としている。
B)1947年の日本外務省の文書も竹島を日本領としている。
X)もし韓国に与えるなら、具体的に竹島の名前をあげたほうがよい。
どちらも、
「もし韓国に与えるなら」、(トラブルをさけるために)、日本が放棄する中に竹島という具体的名前をはっきりと入れたほうがよい、という同じ趣旨なのだと思います。
13日には、「もし韓国に与えるなら」という文言がありませんが、3日後に考えが変わったわけではないと思います。
16日には、13日にはなかった「C」の部分も加えられており、
おっしゃるように「トラブルを避けるために」という趣旨で、よりはっきりと言っているのでしょう。
どちらも、「もし韓国に与えるなら」という、
自身は決定権者ではない、文言へのアドバイザーとしての中立的な立場だと思います。
この7月16日の「(C)」
「同じころの、もう一つの別のドラフト」とは、
竹島を日本領としているわけですから、やはり12月29日の草案であり、彼はこの存在を知っていたと思います。
私自身の拙い英語力にやや自信もなく、ここに原文の英語をコピペしておきます。
ReplyDeleteそれにしても、こんな一次史料を、直接、しかも影印つきで読めるのは有難いことです。
1951年7月13日
http://en.wikisource.org/wiki/Spratly_Island_and_the_Paracels,_in_Draft_Japanese_Peace_treaty_dated_July_13,_1951
DATE: July 13,1951
TO: NA - Mr. Fearey
FROM: OIR/GE - Mr. Boggs
[SNIP]
2. Liancourt Rocks The Liancourt Rocks (Takeshima) were among the islands to which, in a 1949 draft treaty, Japan would have renounced claim to Korea. In a Japanese Foreign Office publication, entitled "Minor Islands Adjacent to Japan Proper" Part 4, June 1947, Liancourt Rocks are included. It may therefore be advisable to name them specifically in the draft treaty, in some such form as the following (Article 2):
(a) Japan, recognizing the independence of Korea, renounces all right, title and claim to Korea, including the islands of Quelpart, Port Hamilton, Dagelet, and Liancourt Rocks.
These rocky islets are described as follows in the U.S. Hydrografic Office publication no. 123A, Sailing Directions for Japan, Volume I (1st ed., 1945):
Take Shima (Liancourt Rocks) (37°15', 131°52' E., H. O. Chart 3320) consists of two barren, guano-whitened, and uninhabited rocky islets and several rocks, which appear to be steep-to. They lie near the steamer track leading from Tsushima Strait to Vladivostok and to Hokkaido, in a position 85 miles northwestward of the Oki Retto, and as they have no navigational aids they present a hazard to mariners navigating in their vicinity at night or in thick weather. Both islets are cliffy, and the western and highest has pointed summit, which rises 515 geet. They are usually visited by seal hunters in July and August. (p.597)
Attachment:
Excert
OIR/GE:SWBoggs:mg
7-13-51
1951年7月16日
http://en.wikisource.org/wiki/SSpratly_Island_and_the_Paracels,_in_Draft_Japanese_Peace_treaty_dated_July_16,_1951
DATE: July 16,1951
TO: NA - Mr. Fearey
FROM: OIR/GE - Mr. Boggs
[SNIP]
2. Liancourt Rocks
By one 1949 draft treaty with Japan, the Liancourt Rocks (Takeshima) were to have been renounced to Korea; by another draft at about the same time they were to be named as being retained by Japan. A Japanese Foreign Office publication, entitled "Minor Islands Adjacent to Japan Proper" Part IV, June 1947, includes "Liancourt Rocks(Takeshima)" and says:
It should be noted that while there is a Korean name for Dagelet, None exists for the Liancourt Rocks and they are not shown in the maps made in Korea.
If it is decided to give them to Korea, it would be necessary only to add "and Liancourt Rocks" the end of Art. 2, par. (a).
These rocky islets are described as follows in the U.S. Hydrografic Office publication no. 123A, Sailing Directions for Japan, Volume I (1st ed., 1945):
Take Shima (Liancourt Rocks) (37°15', 131°52' E., H. O. Chart 3320) consists of two barren, guano-whitened, and uninhabited rocky islets and several rocks, which appear to be steep-to. They lie near the steamer track leading from Tsushima Strait to Vladivostok and to Hokkaido, in a position 85 miles northwestward of the Oki Retto, and as they have no navigational aids they present a hazard to mariners navigating in their vicinity at night or in thick weather. Both islets are cliffy, and the western and highest has pointed summit, which rises 515 geet. They are usually visited by seal hunters in July and August. (p.597)
Attachment:
Excert
OIR/GE:SWBoggs:mg
7-16-51
ふたつの文書とも、同じ「起こしミス」があります。起こした人がコピペしたんでしょうね。
ReplyDelete*the U.S. Hydrografic Office→the U.S. Hydrographic Office
*515 geet.→515 feet.
*Excert →Excerpt
コピペといえば、Boggs:は、the U.S. Hydrographic Officeの文章の引用を、まったく同じ切り方でしていますね。当時のタイプライターにも、「コピペ」の機能があったんでしょうか。
さて、起こしでは省略されていますが、影印の最初の部分によれば、13日の朝にも、16日の朝にも、FeareからBoggsに電話での問い合わせがあったことがわかります。
それに顧問のBoggsが答えているわけですね。
Boggs の前の OIR/GEは Office of Intelligence Research Geography でしょうね。
Fearey の前の NA は 何でしょうか。 North Asia?
ところで、いま重要なことに気が付きましたが、16日の影印には、
If it is decided to give them to Koreaの「If」 に強調のアンダーラインがあります。
13日の影印で見ると、Boggsの提案の文章は
a) Japan, recognizing the independence of Korea, renounces all right, title and claim to Korea, including the islands of Quelpart, Port Hamilton, Dagelet, and Liancourt Rocks.
となっており、
ここで、Dagelet の前のandを手で消して、and Liancourt Rocks.を入れています
これは、実際に調印されたサンフランシスコ平和条約の条文
(a) Japan, recognizing the independence of Korea, renounces all right, title and claim to Korea, including the islands of Quelpart, Port Hamilton and Dagelet.
http://www.mofa.go.jp/region/europe/russia/territory/edition92/period4.html
と同じです。
ということは、Boggsが、「If」 にアンダーラインをつけて仮定した
“If it is decided to give them to Korea”ということが、「実際には起こらなかった」ことを反証しているのではないでしょうか?
Matsuさんへ
ReplyDeleteGoogleグループに李の論文ファイルをアップしましたので、招待状を送りました。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ReplyDeleteOPPさんの探された資料から翻訳します。
李碩祐『日本の領土紛争とサンフランシスコ平和条約』(仁荷大学出版部)(2003年10月)
이석우『일본의 영토분쟁과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인하대학교출판부 2003.10.
・・・・・・・・・・・・・・・・・・・・・・・・・・・・・
56p Ⅳ2.2.2.2. 1949年12月8日付草案
1949年12月8日付け草案(注204)で、独島についての領土処分は、「日本の領土は本州、九州、四国、そして北海道の4つの主要な日本の本島と内海の諸島嶼; 対馬島、独島、・・・等・・・日本海に位置するすべての他の諸島嶼を含む、すべての附属小諸島嶼で構成される。(The territory of Japan shall comprise the four principal Japanese home islands of Honshu, Kyushu, Shikoku and Hokkaido and all adjacent minor islands, including the islands of the Inland Sea (Seto Naikai); Tsushima, Takeshima(Liancourt Rocks), Oki Retto, Sado, Okujiri, Rebun, Riishiri and all other islands in the Japan Sea (Nippon Kai) within a line connecting the farther shores of Tsushima, Takeshima and Rebun:...)」(注205) と規定されている。従って、同草案から、サンフランシスコ平和条約の条約作成者たちは、独島についての日本の領有権を認定し始めた。
同草案の起草作業に関連して、ひとつの注目すべきアメリカ国務省の文書は、アメリカ国務省が、領土処分と関連する平和条約上の明文規定に対し、一般的にして簡潔な規定を原則とすることと言及しており(注206)、 こうした原則は後続の草案(複数形)に影響を与えたものと見られる。
注204 USDOS, supra, note 175
注205 Article 3
注206 関連内容は以下の通り。: "The basic concept of the San Francisco Peace Treaty is that the treaty should be as brief and general as possible.", USDOS, “Memorandum by Maxwell M. Hamilton(U.S. Representative on the Far Eastern Commission) in DOS/FE, 1949/11/7 , [USNARA/Doc.No.:N/A] (on file with author)
・・・・・・・・・・・・・・・・・・・・・・・・・・・・・・・・
訳注 注175(51p)に以下のようにある。
USDOS, “Office Memorandum from Samuel W. Boggs(Special Advisor on Geography, Office of Intelligence Research) to Maxwell M. Hamilton( U.S. Representative on the Far Eastern Commission )and Robert A. Fearey,( Bureau of Far Eastern Affairs, Division of Northeast Asian affairs):Draft Treaty of Peace with Japan, Territorial Clauses”, 1949/12/8, [USNARA/Doc.No.:N/A] (on file with author)
参考 英語版(2002)
ReplyDeletehttp://digital.law.washington.edu/dspace-law/bitstream/handle/1773.1/748/11PacRimLPolyJ063.pdf
Seok woo Lee (2002) THE 1951 SAN FRANCISCO PEACE TREATY WITH JAPAN AND THE TERRITORIAL DISPUTES IN EAST ASIA
131p~132p
2. Draft Dated December 8, 1949
The territorial clause on the Liancourt Rocks in the draft dated on December 8, 1949, (注303) provided:
The territory of Japan shall comprise the four principal Japanese home islands of Honshu, Kyushu, Shikoku and Hokkaido and all adjacent minor islands, including the islands of the Inland Sea (Seto Naikai); Tsushima, Takeshima(Liancourt Rocks), Oki Retto, Sado, Okujiri, Rebun, Riishiri and all other islands in the Japan Sea (Nippon Kai) within a line connecting the farther shores of Tsushima, Takeshima and Rebun.( 注304)
From this draft, it is apparent that the drafters of the San Francisco Peace Treaty began to recognize Japanese ownership of the Liancourt Rocks. Also, it should be noted that there was a U.S. memorandum providing: "The basic concept of the San Francisco Peace Treaty is that the treaty should be as brief and general as possible." (注305 ) This seems to be reflected in the subsequent drafts.
注
303 This draft is excerpted in Draft Treaty of Peace with Japan, Territorial Clauses, supra note 18.
304 Draft Treaty of Peace with Japan, Territorial Clauses, supra note 18, art. 3.
305 Memorandum from Maxwell M. Hamilton, U.S. Representative on the Far Eastern Commission, in DOS/FE, State Dep't Records, Record Group 59 (Nov. 7, 1949) (on file with the U.S.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in College Park, MD).
71p注18
18 Memorandum from Samuel W. Boggs, Special Advisor on Geography, Office of Intelligence Research, to Maxwell M. Hamilton, U.S. Representative on the Far Eastern Commission, and Robert A. Fearey, Bureau of Far Eastern Affairs, Draft Treaty of Peace with Japan, Territorial Clauses, State Dep't Records, Record Group 59 (Dec. 8, 1949) (on file with the U.S.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in College Park, MD) [hereinafter Draft Treaty of Peace with Japan, Territorial Clauses].
訳注 韓国語版・英語版の比較から言えること
ReplyDelete・最後のRebunのあとに、英語版ではなかった省略記号「:...」がある。
・韓国語版では、最後に竹島が再び登場する部分「within a line connecting the farther shores of Tsushima, Takeshima and Rebun」は、あえて韓国語訳されていない。
・Inland Sea (Seto Naikai)「瀬戸内海」を、単に「内海」と訳している。この後の「セミコロン;」は正しいのか。「コンマ, 」ではないのか。
・Robert A. Fearey,がBureau of Far Eastern Affairs,だけだったのが、Division of Northeast Asian affairsが加わっている。1951年7月のFearey,の肩書「NA」はこれであろう。「北東アジア課」
・Samuel W. Boggs からのMemorandum が、Office Memorandumになっている。
・英語版ですでに指摘されているが、"The basic concept of the San Francisco Peace Treaty is that the treaty should be as brief and general as possible.",という言及が、1949年11月7日(すなわち、シーボルドの電報(11月14日)書翰(11月19日)以前に)なされていることを指摘している。
「一般的にして簡潔な」(brief and general )という李碩祐の韓国語訳は、もっと適当な訳がサンフランシスコ条約をめぐる日本人の先行論文にあるかもしれない。
一番注目されるのは、英語版にすでにあったが、
・「同草案から、サンフランシスコ平和条約の条約作成者たちは、独島についての日本の領有権を認定し始めた。」
英語版 From this draft, it is apparent that the drafters of the San Francisco Peace Treaty began to recognize Japanese ownership of the Liancourt Rocks.
12月29日草案以前に、すでに、ここに「画期」があることを英語版に引き続き述べている。この文章を書いたのは、Samuel W. Boggsである。李碩祐がこの文書を発掘した功績は大きいかもしれない。
57p Ⅳ2.2.2.3. 1949年12月19日付草案
ReplyDelete「1949年12月19日付、以前の日本領土の処分についての協定(Agreement Respecting the Disposition of Former Japanese Territories on December 19,1949) 」という形式で起草された1949年12月19日付草案 (注207) は、独島についての領土処分について、「連合国は、韓国の本土と済州島、巨文島、鬱陵島、独島を含む、韓国のすべての海岸の諸島嶼に対するすべての権利と権原を、大韓民国に全権として付与することに同意する。(The Allied and Associated Powers agree that there shall be transferred in full sovereignty to the Republic of Korea all rights and titles to the Korean mainland territory and all offshore Korean islands, including Quelpart (Saishu To), the Nan How group (San To, or Komun Do) which forms Port Hamilton (Tonaikai), Degelet Island (Utsuryo To, or Matsu Shima), Liancourt Rocks (Takeshima),…)」(注208) と規定している。従って、韓国の独島に対する領有権が再び認定された。条約文案の作成形式や規定された内容から見る時、同条案は、全体的なサンフランシスコ平和条約の条約規定方式と相当な差異があることを暗示している。
注 207 USDOS supra, note176
注 208 Article 3
・・・・・・・・・・・・・・・・・・・・・・・・・・・・
訳注 注176(51p)は以下の通り。
176 USDOS,“Agreement respecting the Disposition of Former Japanese Territories; December 19, 1949”1949/12/19 [USNARA/Doc.No.:N/A] (on file with author)
参考 英語版(2002)132p
ReplyDelete3. Draft Dated December 19, 1949
The draft dated December 19, 1949(注306 )was drafted as the "Agreement respecting the Disposition of Former Japanese Territories on December 19, 1949." The territorial clause on the Liancourt Rocks in this draft provided:
The Allied and Associated Powers agree that there shall be transferred in full sovereignty to the Republic of Korea all rights and titles to the Korean mainland territory and all offshore Korean islands, including Quelpart (Saishu To), the Nan How group (San To, or Komun Do) which forms Port Hamilton (Tonaikai), Degelet Island (Utsuryo To, or Matsu Shima), Liancourt Rocks (Takeshima). (注307)
Thus, the ownership of the Liancourt Rocks was given to Korea.
注
306 This draft is excerpted in Memorandum, supra note 25.
307 Memorandum, supra note 25, art. 3.
25 Memorandum, State Dep't Decimal File No. FW 694.001/3-1751, State Dep't Records, Record Group 59(Mar.17, 1951) (on file with the U.S.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in College Park, MD).
訳注 韓国語版・英語版の比較から言えること
ReplyDelete・Agreementを、「協定」と訳している。慎鏞廈の「合意書」とはニュアンスが異なる。
・英語部分の最後のLiancourt Rocks (Takeshima),のあとに、後続の文言があることを示す省略記号「…」がある。英語版にはなかった。慎鏞廈の紹介のように、このあとの文章を示すと、ドラフトに「・・・」部分があり、未完成のドラフトであることがばれてしまうので、隠蔽しているか。
・英語版の「注25」は「注19」の間違い。1951年の文書はやはり関係なかった。
英語版 注19(71p)
19 Agreement respecting the Disposition of Former Japanese Territories, State Dep't Records, Record Group 59 (Dec. 19, 1949) (on file with the U.S.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in College Park, MD).
・「条約文案の作成形式や規定された内容から見る時、同条案は、全体的なサンフランシスコ平和条約の条約規定方式と相当な差異があることを暗示している。」
という部分は英語版にはなし。この韓国語版から加わった。かなり意味深長な表現。李碩祐は、先輩である慎鏞廈への遠慮があるのか、微妙な表現をしているが、
「全体的なサンフランシスコ平和条約の条約規定方式とは相当な差異があることを暗示している。」というのは、かなり否定的な意味合いを含んでいるのではないか。
南基正がこの部分をそのまま引用している。
・・・・・・・・・・・・・・・・・・・・・・・・・・・・・・・・・
参考 南基正論文
一方、李碩祐(イ・ソグ)(2003)の研究によれば、米国は「1949年12月19日付、旧日本領土の処分に関する協定(Agreement respecting the Disposition of Former Japanese Territories on December 19,1949)」という形式の文書に、独島の韓国領有を認める内容が挿入されているとしているが、これはシーボルド意見書以後のことであり、韓国の独島領有権が再び認められたものとして注目される。李碩祐(2003)は、この草案が、文案の作成方式や規定された内容から見て、全体的なサンフランシスコ平和条約の条約規定方式とは相当な差異があることを暗示していると評価しているが、米国が対日講和条約とは別に、領土に関する協定を考慮していたのかどうかについて、研究が必要な部分である。実際に1950年5月、英連邦の日本平和条約実務班がロンドンで行った会議で合意・決定された事項の中に、「日本から分離する領土は、平和条約に言及される必要はない」という項目が入っている。12)従って、英国も平和条約とは別途の協定で領土条項を確認する意図があったのかどうか確認して見る必要がある。
12)李碩祐、2003前掲書、59ページ.
한편 이석우(2003)의 연구에 따르면 미국은‘1949년 12월 19일자, 이전 일본 영토의 처분에 관한 협정(Agreement respecting the Disposition of Former Japanese Territories on December 19, 1949)’의 형식으로 된 문건에서 독도의 한국 영유를 인정하는 내용이 삽입되어 있다고 하는데 이는 시볼드 의견서 이후의 일이며, 한국의 독도 영유권이 다시 인정된 것으로 주목된다. 이석우(2003)는 이 초안이 문안의 작성 방식이나 규정된 내용으로 보아 전체적인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의 조약규정 방식과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는데, 미국이 대일강화조약과 별도로 영토에 관한 협정을 고려하고 있었는지 여부에 대한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다. 실제로 1950년5월, 영연방 일본 평화조약 실무반이 런던에서 가진 회의에서 합의 결정된 사항들 가운데, ‘일본으로부터 분리된 영토는 평화조약에 언급될 필요가 없다’는 항목이 들어 있다.12) 따라서 영국도 평화조약과는 별도의 협정으로 영토조항을 확인할 의도가 있었는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12) 이석우, 2003, 앞의 책, 59쪽.
・・・・・・・・・・・・・・・・・・・・・・・・・・・・・・・・・・・・・・・・・・
・李碩祐は、条文のかたちの「草案」と、このようなメモや別の形式の文書を、同じ「草案」というタームでひとくくりにして並列している。
塚本孝や原貴美恵のように「草案」と、注釈の類は別の扱いをしたほうがわかりやすい。しかし、このやり方で見えてくるものもあるのかもしれない。
ご紹介の資料の133~134pの「資料集」のところに原文がありますね。全文は掲載していませんが、省略部分はある程度わかります。コピペが出来ないので、起こすのが大変ですが、李碩祐先生自身ががどこかネット上にのせていませんかね。
ReplyDelete最初にご紹介した、仁荷大学のサイトに、著書と論文の一覧があります。私も探してみます。
http://ils.inha.ac.kr/member/member_detail.aspx?EncryptedID=T0%2FrOrlADMUCEFvgNxVnVQ%3D%3D
학위논문
- International Law and the Resolution of Territorial Disputes over Islands in East Asia, 2001
주요학술논문
- A Tribunal Navigating Complex Waters: Implications of The Bay of Bengal Case, OCEAN DEVELOPMENT AND INTERNATIONAL LAW, , , 2013.
- 동중국해 해양경계획정과 자원공동개발, STRATEGY 21, 15권 2호, , 2012.
- Piracy-South Korea-prosecution in national courts-passive personality principle-universal jurisdiction, AMERICAN JOURNAL OF INTERNATIONAL LAW, 106권 3호, 630~636, 2012.
- 2011년 독도 관련 한일간의 대립과 독도 문제에 대한 국제법적 이해, 일본공간, 10, 44~72, 2011.
- Dokdo: The San Francisco Peace Treaty, International Law on Territorial Disputes, and Historical Criticism, ASIAN PERSPECTIVE, 35권 3호, 361~380, 2011.
- 영토의 획득에 사용된 무력사용의 효력과 영토처분, 백산학보, , 227~250, 2011.
- The 1951 San Francisco Peace Treaty and Its Relevance to the Sovereignty of Dokdo, CHINESE JOURNAL OF INTERNATIONAL LAW, 9, 741~762, 2010.
- 주요 해양국가의 수역별 해양관할권 제도, 백산학보, 87, 249~288, 2010.
- 영토분쟁의 해결에 있어 역사비평적 접근의 시도, 서울국제법연구, 17권 1호, 47~63, 2010.
- 해양관할권 관리시스템 구축을 위한 주요 해양국가의 입법상의 노력, 법학연구, 13권 1호, 29~60, 2010.
- 대한민국 영토정책의 좌표설정 필요성: 독도와 간도문제를 중심으로, 백산학보, 85, 297~341, 2009.
- 해양경계획정, 분쟁수역관리 및 해양자원개발에 대한 주요 해양국가의 법과 제도, 서울국제법연구, 16권 2호, 169~214, 2009.
- North Korea and the Law of the Sea, ISSUES IN LEGAL SCHOLARSHIP, 8권 1호, 1~10, 2009.
- 식민지 및 보호령 제도에 관한 프랑스 국제법 학자들의 견해: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을 중심으로, 백산학보, 83, 601~643, 2009.
- 유럽에서의 디지털 방송콘텐츠 보호, 정보법학, 12권 2호, 149~182, 2008.
- 지방자치단체 상호간의 해상경계획정분쟁에 대한 국제법적 제언, 국제법평론, , 149~172, 2008.
- 보호령 제도의 국제법적 성격, 안암법학, 통권 25호, 503~540, 2007.
- 중국의 영토 분쟁 사례를 통해 본 중국의 영토 취득에 대한 관행 분석: 티베트 분쟁을 중심으로, 백산학보, , 253~278, 2007.
- 독도 영유권 문제의 쟁점(爭點)과 제언(提言)-독도방문 일본 외신기자단과의 좌담-, 일본문화연구, 20집, 457~470, 2006.
- 국제법상의 영토분쟁, 독도, 백산학보, 75호, 447~467, 2006.
- 한국의 간도 영유권 주장을 위해 극복해야 할 현대 국제법의 법리 연구, 백산학보, 74호, 295~340, 2006.
- 1951년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에서 독도의 영토처리 과정에 관한 연구, 북방사논총, 7호, 107~141, 2005.
- 영토 취득과 관련한 국제법의 일반원칙과 한국의 간도 영유권 주장의 향후 연구방향에 대한 시론적 제언, 백산학보, 72호, 261~290, 2005.
-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에서의 독도의 지위와 향후 독도분쟁의 대응논리 개발을 위한 제언, 국제법논총, 11권, 79~98, 2005.
- 국제법상 식민지 문제와 영토분쟁: "屬國"과 "領土", 백산학보, 71호, 399~436, 2005.
- 국제법상 "속국"의 개념적 특수성, 간도학보, 1호, 175~192, 2004.
- 한국에서의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의 종교적, 국제법적 고찰, KOREAN YEARBOOK OF INTERNATIONAL LAW, Vol.4, 91~117, 2004.
- 아프리카의 식민지 문제와 영토 분쟁에 관한 국제법적 고찰, 국제법학회논총, 49권 2호, 79~101, 2004.
주요학술저서
- Northeast Asia and International Law: Contemporary Issues and Perspectives, Brill/Martinus Nijhoff Publishers, 2013.
- 외국인 이주노동자 인권백서, 도서출판 오름, 2013.
- Asian Approaches to International Law and the Legacy of Colonialism and Imperialism: The Law of the Sea, Territorial Disputes and International Dispute Settlement, Routledge, 2013.
- Sharing and Distributing Ocean Resources, Oruem Publishing Company, 2012.
- Maritime Challenges and Priorities in Asia: Implications for Regional Security, Routledge, 2012.
- Maritime Energy Resources in Asia: Legal Regimes and Cooperation, The National Bureau of Asian Research, 2012.
- 해양의 국제법과 정치, 연세대학교 동서문제연구원ㆍ도서출판 오름, 2011.
- Dokdo: Historical Appraisal and International Justice, Martinus Nijhoff Publishers, 2011.
- 북중•북러 해양협정 대응방안 연구, 한국해양수산개발원, 2010.
- 한일역사의 쟁점 2010 (2) - 하나의 역사, 두가지 생각, 경인문화사, 2010.
- 해방 이후 한일관계의 재편, 경인문화사, 2010.
- Maritime Boundary Disputes, Settlement Processes, and the Law of the Sea, Martinus Nijhoff Publishers, 2009.
- 東아시아의 領土와 民族問題, 경인문화사, 2008.
- 동아시아의 영토분쟁과 국제법, 집문당, 2007.
- 한미행정협정과 국제법2: 미군기지반환과 환경문제, 학영사, 2007.
- 통상분쟁 속의 한국: WTO 한국분쟁사례 분석, 학영사, 2006.
- 동북아 지역의 영유권 분쟁과 한국의 대응전략, 다운샘, 2006.
- 국제인권법, 세창출판사, 2005.
- 한미행정협정과 국제법: 미군 한강독극물 무단방류사건 분석, 학영사, 2005.
- 환자의 권리와 무수혈 치료, 학영사, 2005.
- 양심적 병역거부: 2005년 현실진단과 대안모색, 사람생각, 2005.
- 독도 분쟁의 국제법적 이해, 학영사, 2004.
- 영토분쟁과 국제법: 최근 주요 판례의 분석, 학영사, 2004.
- 일본의 영토분쟁과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인하대학교 출판부, 2003.
Matsuさん
ReplyDelete翻訳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
12月29日草案以前に、すでに、ここに「画期」があることを英語版に引き続き述べている。この文章を書いたのは、Samuel W. Boggsである。李碩祐がこの文書を発掘した功績は大きいかもしれない。
Boggsは、
「As requested, I have studied dispatch No.806 from the U.S. Political Advisor for Japan, dated Tokyo, November 19, 1949, in relation to the territorial provisions of the draft treaty to peace with Japan dated November 2, 1949.[….] The suggested revision of Article 3 follows.」
と書いているので、竹島を日本領とする「画期」としてはやはりシーボルドの意見書になると思います。このボグスの「提案」を「条約草案」と拡大解釈し、シーボルド意見書よりもこの提案を強調することで何か韓国側の主張が有利になる点があるのでしょうか?「一端、草案(提案)では日本領になったが、再度合意書で覆した」と合意書の位置づけを強調するためか?
「条約文案の作成形式や規定された内容から見る時、同条案は、全体的なサンフランシスコ平和条約の条約規定方式と相当な差異があることを暗示している。」という部分は英語版にはなし。この韓国語版から加わった。かなり意味深長な表現。
李は、連合国合意書がシーボルト意見書の「a document subsidiary」であることに気がついているのかも。
南基正論文:実際に1950年5月、英連邦の日本平和条約実務班がロンドンで行った会議で合意・決定された事項の中に、「日本から分離する領土は、平和条約に言及される必要はない」という項目が入っている。
これも原文の確認が必要ですね。「領土の処分に言及しない」のはわかるのですが、「分離する領土に言及しない」では、ちょっと意味が通じなくなります。
ご紹介の資料の133~134pの「資料集」のところに原文がありますね。全文は掲載していませんが、省略部分はある程度わかります。コピペが出来ないので、起こすのが大変
ReplyDelete原本影印の資料も入手したら、あわせてOCRでテキスト化しますので、少々お待ち下さい。
あと、Boggsが50年の7月31日まで、Dokdoは竹島とは別の島と考えていたってことが新たにわかりました(P151-152)。8月3日のフェアリーのメモも竹島とは別の島との認識です。8月7日のダレスからムチオ宛の電報も「Dokdoの位置がわからない」とのことなので、まだ気がついてません。
ReplyDeleteFor MUCCIO from DULLES.
Neither our geographers nor Korean Embassy have been able locate Dokdo and Parangdo Islands. Therefore unless we hear immediately cannot consider this Korean proposal to confirm their sovereignty over these islands.
8月10日のラスク書簡ではDokdoが竹島とのことであるとしてますから、3日間の間に誰かが気がついたのかムチオが竹島のことだと回答したのか。そのあたりの経緯は不明ですね。
恐らくDokdoが竹島のことだと気がついた時点で「それなら日本領」だということで、3日間とい短期間にラスク書簡を出したのではないでしょうか。
This comment has been removed by the author.
ReplyDelete"李碩祐の英語論文によれば、NARAにあるようです。
ReplyDeleteState Dep't Records, Record Group 59 (Dec.19, 1949) (on file with the U.S.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in College Park, MD).
"
心当たりを探してみましたが、無いようです。もう少し時間が必要ですが、
"この資料は、連合国が対日本講和条約を締結するのに先立ち、旧日本の領土処理の原則を事前に合意し、定めておいた文書である。文書それ自体には日付がなく、1947年の1次草案から1949年の5次草案の書類綴に、みな複写されて綴じられていることから、1947年に作成され、合意された文書と見られる。"
平和条約関係の綴りにあるのかもしれませんね。だとすると、国会図書館にマイクロであるかも。。。
あと、”8月10日のラスク書簡ではDokdoが竹島とのことであるとしてますから、3日間の間に誰かが気がついたのかムチオが竹島のことだと回答したのか。そのあたりの経緯は不明ですね。”
の件ですが、国史編纂委員会の『独島資料集 -美国編- II』の232頁に、
"Abstract
Subject : Correspondence regarding Tokto, Island claimed by Korea"
という文書があって、1-9項目にわたって平和条約起草時における竹島領有問題の経緯の解説の概要になっています。(最後の9項目目だけは条約発効後だからか、手書きで付け足してある。)(必要ならばあとでスキャンしてアップロードします。oppさん国会図書館でコピーしてきましたか? 私、今ある方からお借りしていて三巻とも手元にあります。)
5. Dept indicated it could not locate Dokdo or Parangdo(Deptel Aug7, '51) CONFIDENTIAL
6. Emtel 135, Aug 8 stated Dokdo(Jap name Takejima) situatedat 37°15’N, 131° 53’East. Added Fornmin withdrew request for inclusion Parangdo in treaty. CONFIDENTIAL
とあります。なので、流れとしては、8/7にダレスがムチオ駐韓米大使に独島のことを問い合わせると、翌日に正確な経緯度と日本名が竹島であることをムチオが知らせてきたのでしょう。ここ(8/8)でようやくDokdoが竹島/Liancourt Rocksであることが国務省内で判明し、それは竹島なので、日本領として平和条約の日本が放棄する領域に含まれなかった。つまり、韓国領ではなく日本領として決定しました。
この文書に日付はないのですが、"RG 84, Records of the Foreign Service Posts of the Department of State,Entry 2846, Korea,Seoul Embassy, Classified General Records, 1953-55, Box. 12 " と出所が書かれてあり、前のページ(231頁)は1952年10月10日、次ページ(233頁)は1952年10月15日とそれぞれ日付があるので、この文書はその間のものと推定されます。もしくは、以前作っていたものに、この時期に9項目目を書き足して添付したか…
いずれにせよ、前出のFor MUCCIO from DULLESの電文も同じBOXのようなので、このBOXを探すといいかと思います。ほかにも重要な書類があるかも。とりあえず、韓国の中央図書館のサイトにはありませんでした。国史編纂委員会と別個に収集したんでしょう。国史編纂委員会はこうした米公文書といった資料を公開しているんでしょうか?
oppさんが送って下さった李碩祐の資料集149頁
ReplyDelete1951/5/29[USNARA/694.001/5-2951 CS/JEC]
US Department of State, "Office Memorandum to Mr.Dullles from Mr.Allison: Unresolved Treaty Provisions"
という資料がありますが、これ、日付と内容が噛み合わないですね。内容は明らかに1951年6月14日付米英共同草案(5/3付草案には2(a)という条項はない。)に対する修正提案なのに、Dokdo and Parangdoを修正項目として挙げ、対馬を落としています。なぜ?
とりあえず気が付いたことは、シンヨンハの資料左上のDECLASSIFIED等の番号と上部中央にある文字が、イソグの資料にはないので、同じ文書かもしれないけれど、違う綴りに入っているものと推測できます。
ReplyDeleteただ、12/19付の文書は、平和条約における領土処分の形式を、国際法の観点から国務省法律顧問に尋ねたものに対する返答文書で、問題の文書はそれに添付されていたものではないかと思います。2ページ目以降がカットされているので、推測にすぎませんが。このP138文書のイソグの韓国語解説、どなたか翻訳して下さると助かります。
Kaneganeseさん
ReplyDeleteP138のイソグの韓国語解説は、
Tateの最初のパラグラフの翻訳のようです。
「1949年12月19日
対日平和条約草案の領土条項
あなたは、日本の領土を規定し、その領土を処分する連合国にすべてのその他の領土に対するすべての権利を日本が放棄し、そしてそのような処分が対日平和条約と同時に履行される別の協定により決定できるように、対日平和条約の領土条項を再び起草しなければならない妥当性についての当部署の見解を要請した。」
英文訳の悪文の代表のような文章で、私自身この文章の意味がよくわかりませんが(笑)、
もとの英語を読むと、意味が分かような気もします。
「対日平和条約と同時に履行される別の協定により決定できるように、対日平和条約の領土条項を再び起草しなければならない妥当性」とあるので、別途に、領土について決定する「協定」(=合意書?)のテキストを作成したのではないかと思います。それがこの「合意書」なるテキストなのでしょう。
よって、李碩祐はこの日付の文章、として紹介しているのではないでしょうか。
>「シンヨンハの資料左上のDECLASSIFIED等の番号と上部中央にある文字が、イソグの資料にはない」
おっしゃるように、慎鏞廈が提供している影印の上のほうのスタンプ(秘密解除の日付でしょうか?92年?)、は、この李碩祐の資料集の影印にはないみたいですね。
別の文書なんでしょうか。
「シンヨンハの見つけた資料」には、the Kurile islands が、もともとなく、
Done at the city of ------------in the English language, this -------day of ------,1950.
があったのでしょうか?
このTateの文書、最後まで読みたいです。
それから、2つめ以降のパラグラフについても「わかる日本語訳」をつけてくれるとうれしいです。(笑)
いずれにしても、実際には、こうした「合意」は連合国の間にはなかったわけで、そのことを強く発信していく必要があると思います。
それにしても、12月8日づけのBOGGSのメモと12月29日草案は同じ趣旨(竹島は日本)であるのに、この「12月19日付け」の文書が、その中間の日付であるのも関わらず、古い考え方=11月2日以前の、竹島を韓国側に付ける考え方に立っているのはなぜなのか。
また、しかもthe Republic of Koreaという東側は絶対に受け入れない、西側の一方的な用語を使って作られているのは、なぜなのか。
南基正(2008)論文の英連邦の動きに関係する部分です。
ReplyDelete「実際に1950年5月、英連邦の日本平和条約実務班がロンドンで行った会議で合意・決定された事項の中に、「日本から分離する領土は、平和条約に言及される必要はない」という項目が入っている。12)従って、英国も平和条約とは別途の協定で領土条項を確認する意図があったのかどうか確認して見る必要がある。」12)李碩祐、2003前掲書、59ページ.
李碩祐、2003
59p最後のパラグラフの翻訳
英連邦平和条約実務班がロンドンで行った協議で合意・決定された諸事項の中には、「日本から分離される領土は、平和条約で言及される必要はない」(The territories to be taken from Japan need not be mentioned in a Peace Treaty.)(注213)という項目が入っている。そればかりでなく、領土問題については、英連邦平和条約実務班は一般的に次のような事項に合意した。第一に、日本の主権は日本の主要な本土と多数の付属小諸島で構成され、付属小島についての正確な概念の定義は平和条約の締結会議で決定する。第二に、日本から割譲されるべき領土の処分については、サンフランシスコ平和条約それ自体に言及される必要はない。平和条約で日本は単純に分離される領土についてすべての権利を放棄する方式で記述する(注214)。従って、結果的に、後述するアメリカのダレス長官の平和条約の領土条項と関連した短縮型草案の提案とともに、英連邦平和条約実務班のこのような立場は平和条約内での独島の領土処理に影響を与えることになった。
注213
USDOS, “Memorandum by John M. Allison(US Delegation of the United Nations)” 1950/5/25 [USNARA/ Doc. No.: N/A] (on file with Author); USDOS, “Memorandum by Mr. Hamilton (U.S. Representative on the Far Eastern Commission): Territorial Provisions in Japanese Peace Treaty” , 1950/5/26 [USNARA/ Doc. No.: N/A] (on file with Author);
注214
British Embassy in Washington, DC, USA, “Commonwealth Working Party on Japanese Treaty: Report of the Commonwealth Working Party (Cabinet Office, S.W.1) 17th May, 1950. p8” 1950/9/20, [USNARA/694.001/9-2050 CS/H]
Ⅳ2.2.2.4. 1949年12月29日、1950年1月3日草案の説明のあとに
Ⅳ2.2.2.5. 1950年8月7日、1950年9月11日草案の前に書かれている
日付が注213は1950年5月、注214は9月なので、前者の説明というよりは、後者への変化への前置きの説明文と考えられる。
英語版2002該当部分 134p
ReplyDeleteAmong the list of general areas of agreement reached by the Commonwealth Japanese Treaty Working Party in London is an item titled “Territories to be taken from Japan need not be mentioned in a Peace Treaty.” 注313 On other territorial issues, it was generally agreed by the Commonwealth Japanese Treaty Working Party that: first, Japanese sovereignty would be confined to the four main islands and to a number of adjacent minor islands whose precise definition would be a matter for the Peace Conference; and second, the disposition of the territories to be ceded by Japan need not be dealt with in the San Francisco Peace Treaty itself. Japan might merely renounce all claims to the ceded territories.注314
注
313
Memorandum from John M. Allison, U.S. Delegation to the United Nations,
State Dep't Records, Record Group 59 (May 25, 1950) (on file with the U.S.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in College Park, MD);
Memorandum from Maxwell M. Hamilton, U.S. Representative on the Far Eastern Commission,
Territorial Provisions in Japanese Peace Treaty, State Dep't Records, Record Group 59 (May 26, 1950) (on file with the U.S.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in College Park, MD).
314
British Embassy in Washington, DC, USA, to Commonwealth Working Party on Japanese Peace Treaty, Report of the Commonwealth Working Party, State Dep't Decimal File No. 694.001/9-2050 CS/H,
State Dcp't Records, Record Group 59 (Sept. 20, 1950) (on file with the U.S.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in College Park, MD).
OPPさん
ReplyDelete>Boggsが50年の7月31日まで、Dokdoは竹島とは別の島と考えていたってことが新たにわかりました(P151-152)。
16/5/13 21:11
これは、李碩祐の作った資料集ですから、李碩祐もそのことをよく知っている、ということですね。
Makotoさんからメールを頂き、代理投稿いたします。今度は彼がログインできないのでしょうか…
ReplyDeleteーーーーーーーーーーーーーーー
Makotoです。
19/5/13 10:43付けのmatsuさんのコメントを読んでの感想です。私がエントリしようとすると受け付けてもらえません。今までも何度か試みていたのですが、うまく行かず諦めてきました。
しかし今回は一言残しておきたいので、代理エントリをお願いすることにしました。お手を煩わせて恐縮ですが宜しくお願いいたします。
---------------------------
≫第一に、日本の主権は日本の主要な本土と多数の付属小諸島で構成され、付属小島についての正確な概念の定義は平和条約の締結会議で決定する。第二に、日本から割譲されるべき領土の処分については、サンフランシスコ平和条約それ自体に言及される必要はない。平和条約で日本は単純に分離される領土についてすべての権利を放棄する方式で記述する(注214)。
第一項目は、「連合国最高司令官総司令部訓令第677号(SCAPIN-677)によって返還された」との韓国側の主張を否定する証拠となります。米国は1946年2月のSCAP/GHQと日本政府の連絡会議で「本指令に依る日本の範囲の決定は何等領土問題とは関連を有せす之は他日講和会議にて決定さるへき問題なり」と回答していますが、英国を中心とした英連邦の国々も領土の調整が講和会議によるとの認識を持っていたことが文書で確認できたことの意味は大きいと思います。
そのひとつとしてラスク書簡(http://en.wikisource.org/wiki/Rusk_note_of_1951 )の重要度が増すことを指摘しておきたいと思います。
第二項目は、日本が放棄する領域はサンフランシスコ講和条約(SF条約)で明記するものの、日本が放棄した領域の帰属先については連合国側で決めるので、SF条約に記載する必要はないということなのでしょう。こういう考え方に立つなら、処分権が日本から連合国に譲られたとする少々無理のある解釈をする必要はなくなります。処分権は当事国に専管するものであり、たとえ戦勝国といえどもその行使を強要できないものとして認識されてきました。なので処分権が日本から連合国に譲られたとするのは無理があるように感じていたのですけれども、日本がある領域の領有権を放棄するという形で処分権を行使するのであれば何ら問題はありません。放棄された領域の管轄をどうするかは、連合国内での問題なのですから。
≫アメリカのダレス長官の平和条約の領土条項と関連した短縮型草案の提案とともに、英連邦平和条約実務班のこのような立場は平和条約内での独島の領土処理に影響を与えることになった。
どう影響を与えたと認識しているのでしょうね。
なお「ダレス長官」としているのは「ダレス大使」もしくは「ダレス顧問」の誤りでしょう。
それとウィスコンシン大学のサイトでFRUSを公開しています。
http://images.library.wisc.edu/FRUS/EFacs2/1951v06p1/reference/frus.frus1951v06p1.i0013.pdf
ーーーーーーーーーーーーーーーーーーーー
<疑問点と仮説>
ReplyDelete1.Agreementの作成時期と作成者:12月19日のTateの文書(the draft which you have submitted)からして、12月15日のBoggs提案ベースの領土条項修正案は国務省極東局のHamiltonから国務省法律顧問室のTateに送付されたものと思われる。また、領土条項修正案と連合国合意書は「J」の文字が上に飛び出し気味なこと等から同じタイプライターで作成されたものと思われる。ヘッダや紙の状況も同じように見える。このため、連合国合意書も極東局で作成され、領土条項修正案と一緒にTateに提示されたものと思われる。竹島の扱いの不整合があるが、極東局で最初に合意書を作成した後にBoggsの条約修正案が送付されてきたのではなかろうか。見てのとおり、連合国合意書は基本的な誤字や間違いがあり、十分な校正を踏まえた文書ではない。また、2つの文書による処分方法のフレームワークの相談であり個々の島の扱いは重要でないため、不整合をかかえたままTateに送付したのではないか。
2.Tateの回答後:連合国合意書に関する資料は一切ない。基本的な誤字や間違いを修正したものもない。12月29日の条約草案では、Boggs提案ベースの領土条項修正案も破棄され直接的な割譲に戻った。「批准等が必要」との法律顧問室の回答を得て、極東局では実現性の面から連合国合意書による処分を破棄したものと思われる。
<仮説を踏まえた経緯>
1.1949年11月17日:Sebald駐日政治顧問が意見書で直接的な割譲ではなく、処分は条約とは別の補足文書で行うように提案。
2.1949年11月17日-12月8日:Agreement Respecting the Disposition of Former Japanese Territories(連合国の旧日本領土処理に関する合意書)を作成
3.1949年12月8日:Boggs地理特別顧問がシーボルドの意見書を踏まえた領土条項を提案
4.1949年12月15日:極東局でBoggsの提案条項を更に加筆修正して清書し、2.の合意書と共に法律顧問室のTateに送付
5.1949年12月19日:Tateが「2つ目の文書にも条約としての扱いや批准が必要。もし、2つの文書で行うと決めたのなら顧問室も手伝う」と国務省極東局のHamiltonに回答。
6. 1949年12月19日-12月29日:極東局で2つの文書による処分及びBoggsベースの領土条項修正案、領土連合国合意書を破棄
7.1949年12月29日:極東局で従来どおりの直接割譲する条約草案を作成。ただし、竹島は日本領に修正。
Matsuさん
ReplyDeleteこれは、李碩祐の作った資料集ですから、李碩祐もそのことをよく知っている、ということですね。
彼はテキストも起こしていますし、知っていると思います。(気がついていない可能性はありますが。。)
Makoto 様
ReplyDelete덜레스 국무장관
ダレス国務長官とあります。おっしゃるように、当時ダレスは国務長官ではなく「国務長官顧問」あるいは「ダレス大使」ですね。李碩祐の勘違いでしょう。
「国務」は私の訳し落としです。すみません。
http://ko.wikipedia.org/wiki/%EC%A1%B4_%ED%8F%AC%EC%8A%A4%ED%84%B0_%EB%8D%9C%EB%A0%88%EC%8A%A4
http://ja.wikipedia.org/wiki/%E3%82%B8%E3%83%A7%E3%83%B3%E3%83%BB%E3%83%95%E3%82%A9%E3%82%B9%E3%82%BF%E3%83%BC%E3%83%BB%E3%83%80%E3%83%AC%E3%82%B9
http://en.wikipedia.org/wiki/John_Foster_Dulles
最後の文章
「従って、結果的に、後述するアメリカのダレス国務長官の平和条約の領土条項と関連した短縮型草案の提案とともに、英連邦平和条約実務班のこのような立場は平和条約内での独島の領土処理に影響を与えることになった。」
この部分は2002年の英語版にはなく、2003年の韓国語版で加わっています。
Oppさん
ReplyDeleteそうすると「12月19日」という李碩祐の日付特定は間違っている、ということになるのでしょうか?
そもそも「Agreement ~」という文書自体には、日付を特定するものはついていない、ということでしょうか。
12月8日のBoggsの文書の「前」に持ってくる根拠は、文言としては、どの部分でしょうか?
私が書いた
ReplyDelete>the Republic of Koreaという東側は絶対に受け入れない、西側の一方的な用語を使って作られているのは、なぜなのか。
ですが、原貴美恵『サンフランシスコ平和条約の盲点』51pに
1949年12月の草案では、前文の条約締結国のリストに「朝鮮」が加えられた。
とあります。この「朝鮮」は、原貴美恵のこの著書の約束で「Koreaの訳語」です。
(「12月の草案」とは12月29日の草案です。)
原貴美恵は続けて
「大韓民国政権は1年前の1948年12月12日に既に国連総会で正式に承認されて」おり、「調印国のリスト加えられたのは、新しく誕生した反共産政権の国際的地位を向上させる意図があった為と思われる。」と書いています。
1949年12月時点では、こうした背景から「韓国 the Republic of Korea」が使われたドラフトを作ったものと思われます。
Matsuさん
ReplyDeleteそもそも「Agreement ~」という文書自体には、日付を特定するものはついていない、ということでしょうか。
私が入手した国会図書館のマイクロにも李の資料集の影印にも合意書そのものに日付はついてないです。なお、国会図書館の法律顧問室のマイクロですが私が送付したpdfのページの順のとおりに連続したコマで格納されており、間に別の資料はありませんでした。その前後には平和条約の領土関係に関する資料はなかったと思います。(私は、15日の日付がついた条約の領土条項案と合意書が一連のものととらえていますので、一連の資料の頭にある15日が合意書にも適用されると考えています)
12月8日のBoggsの文書の「前」に持ってくる根拠は、文言としては、どの部分でしょうか?
「竹島を日本領としたBoggsの提案と整合していない」ことが唯一の根拠です。また、その前提として「ドラフトといえどアメリカがそんな間違いをするわけがない」という推定を要します。合意書の「やっつけ仕事の感じ」をみると、そんな細かいことを気にせず作ったのではと考えることもできますので、根拠としては弱いです。ただ、12月15日前に作成し、Tateに条約の領土条項案と一緒に送付した(=李の19日は間違い)というのは間違いないと考えています。
ボグスの提案に基づく平和条約での領土規定条項修正案と連合国合意書の草案のテキスト及び原本影印をWikisourceにアップしました。
ReplyDelete・12月15日に国務省極東局から国務省法律顧問室に送付されたと考えられる領土条項案と合意書草案→クリック
・国務省極東局からの意見照会に対する12月19日の法律顧問室Tateの回答→クリック
スペルミス等の間違いがあると思いますので、発見されたら修正をお願いします。
合意書関係として上記以外にシーボルド意見書に沿って12月8日にBoggsが提案した領土規定条項案があります。これもその内アップしたいと思いますが、Boggsの案に更に加筆修正したのが12月15日の最初のページの領土規定条項案です。
Oppさん
ReplyDelete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これで「原文」を見ながら議論ができるようになりました。
慎鏞廈が the Kurile islands を落としているのは、挿入されていたからなんですね。
挿入される以前のテキストが別に存在するのか。
この文書には、上の方にDeclassified のはんこが押されていないようですが、韓国側が出してきている、はんこが押されているテキストが別にあるのかもしれません。
12月15日の文書と、「Agreement~」の文書が、同じくJapanの「J」の字が上に飛び出している同じタイプライターで打たれている、というのはOPPさんの「大発見」だと思います。
「Agreement~」の文書が、「・・・」の残っている不完全なドラフトであることも再確認されました。
李碩祐は、「Agreement~」は12月19日の文書だ、とする明確な根拠を示していないと思います。確かにBoggs の文書の前であれば、11月2日草案までの古い考え方にのっとった(竹島を韓国につける)ドラフトであってもおかしくないわけです。
原文を起こし付きでのせてくださっているOPPさんの努力に、再び感謝いたします。
12月8日のBoggsの提案の影印とテキストアップしました。→クリック
ReplyDeleteMatsuさん
新資料を含めた新しい投稿をしたいと思います。
新しい投稿は、へたくそな英語にしておきました。議論の経緯がわかるようにこの投稿はこのままにしておきます。
ReplyDeleteThis comment has been removed by the author.
ReplyDelete英国の件ですが、「東西対立により処分を決定できない」という現実を忌避するために、結果的に同じようなアプローチになったんだと思います。
ReplyDelete李は、「英連邦平和条約実務班のこのような立場は平和条約内での独島の領土処理に影響を与えることになった」と評価してますが、東西対立の現実が影響を与えたというのが正確ではないでしょうか。
It's a nonsense. In the SF treaty, Japan accepted the following clause officialy with agreement signs from the Allied Powers.
ReplyDeleteCHAPTER II TERRITORY
Article 2
(a) Japan recognizing the independence of Korea, renounces all right, title and claim to Korea, including the islands of Quelpart, Port Hamilton and Dagelet.
1. I don't see any clear statement that Dokdo belongs to Japan the treaty. So all the above claims are wrong and illegal.
2. Korea has 3,152 offshore islands. Why Japan insist on Dokdo only?
1 You don't know the way to read the treaty. You should read article 2(a) as it is written.
ReplyDelete2 Japan insists on Takeshima only, because Korea is illegally occupying Takeshima which is a Japanese territory. Japan has no reason to be interested in three thousand Korean islands.